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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Miscellenous essay - 허접한 수필들


  
 정산(2010-06-27 23:44:52, Hit : 4295
 본가입납(本家入納)의 기억(記憶)들

본가입납(本家入納)의 기억(記憶)들

 

아들이 아버지한테 보내는 편지 겉봉에는 아버지 이름 친전(親展) 대신에 아들 이름 본가입납(本家入納)으로 썼었다. 본가에 도착된 편지의 답장은 며칠 뒤에 소액환과 함께 하숙집으로 배달되었다. 본가입납은 아들이 아버지한테 요청하는 송금청구서이면서 그의 마음을 알리려는 통지서로 기능했다.

미안해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퇴직금이 있으니 까딱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퇴직금과 아들은 미래의 희망이었다.

 

아버님 전상서

계절은 바야흐로 봄을 막 지나고 여름의 문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머님도 별고 없으시고 동생들도 잘 있는지요?

저는 부모님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월례고사에서 국어는 어쩌구, 영어는 저쩌구, 수학은 보통으로 ....

벌써 여름 방학이 기다려집니다. 어머님이 해 주시던 맛있는 밥이 오늘 따라 더 생각납니다.

-중략-

다름이 아니오라 하숙비와 잡비가 필요하오니 송금해 주시면 아껴 쓰겠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요

1973년6월 XX일 아들 올림

 

본가입납은 객지에 있는 아들이 돌아 갈 본가가 있다는 것과 본가에 오지 않고 객지에서 떠돌아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디아스포라를 전제로 객지에 아들을 보낸 것은 근대적 풍경이었고, 서열화되는 사회에 편승하려는 당위였었고, 아버지의 자존적인 자부심이기도 했다.

세월속에서 본가입납은 없어졌다. 가늘고 긴 손으로 쓰시던 독특한 글씨체의 답장도 없다. 본가입납은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행위였지만 느린 시절에 맞는 기다림, 예의, 겸손을 함유하고 있었다.

 

37년이 흘러 아버지는 신장이 기능을 잃었고, 늙어서 뼈만 앙상하고 배가 등에 붙고 허리가 굽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한번에 4시간씩, 죽을 때까지 혈액 투석을 해야 한다. 토요일 투석간호를 아들이 자청한다. 투석이 진행되는 동안에 고혈압, 당뇨등으로 신장이 심각하게 손상된 환자와 그 환자들을 간호하는 성자 같은 보호자들을 만난다. 토요일 오전에 아들은 생경한 세계에 잠깐 머문다. 아들은 토요일 오전에만 아버지에게 잠깐 필요한 존재가 된다.    

 

본가는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동되었고, 아버지는 중년에서 병약한 노인으로 변했다. 아버지 집에는 아들이 보냈던 본가입납의 하나가 빈한한 시대의 유품으로 잔뜩 먼지를 쓴 채 있다. 아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인공신장실에 가기 위해 아파트의 본가에 입납된다. 아들은 위태로운 아버지를 보면서 그 옛날의 본가입납 시절을 떠올린다.

 

본가가 있는 그 곳, 낮에는 비워지고 밤에는 채워진 동네...

감나무 잎을 흔드는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낮에 밥맛이 없으면 보리밥을 보리차에 말아서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여름 점심을 했고, 문풍지를 흔드는 한 겨울에는 뻬때기죽으로 겨울 점심을 했다.   

삐걱거리는 녹슨 함석 대문을 열고 들어 서면, 마당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만들었던 평상이 있고, 아들보다덩치가 큰 똥개가 꼬리를 흔들어 댔다. 개집옆 채마밭에는 방아, 상추 고추, 가지가 있었고, 툇마루 아래엔 장작이 쌓여 있었다.

벽과 천장의 도배를 거들던 기억속에 누런 창호지와 때묻은 문고리도 같이 있다. 한 겨울에 방바닥은 뜨거워도 책상위의 잉크는 얼고, 천장속에는 쥐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퍼세식 통시에는 구데기가 풍성했다. 수채를 지난 하수가 골목길 도랑에서 악취를 풍기고, 쥐약을 먹고 목이 타는 쥐들이 시궁창을 머리를 처박았다.

땅에 붙은 낮은집들이 수수한 모습으로 좁은 골목을 위압하지 않던 본가들은 거개가 비슷했다. 황갈색 페인트가 두텁게 칠해진 샛기둥 사이에 회벽은 바랬고, 서까래 아래에 파리똥이 잔뜩 묻은 액자들이 제 각각이었다. 흑백 사진에 입술만 붉게 칠해진 아버지, 어머니 결혼 사진과 누렇게 바랜 할머니의 흑백사진과 이발리즘풍의 그림들이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본가는 느리고, 변하지 않는 것들로 조용했고, 아버지는 항상 과묵했다.

 

힘들게 살았던 그 시대를 아들은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근대에도 현대에도 포섭되지 못했던 아버지가 행했던 것들을 다 긍정하지 않는다. 시대의 해일 속에서 거친 시대를 관통했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는 가여웠다. 이제 질병에 굴복하여 치료를 조용히 수용한다. 아들에게 기대는 아버지는 아이처럼 되어 간다. 아들이 느끼는 측은함과 무력함은 불가항력으로 보이고 언젠가 끝나는 방문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말없는 아버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아버지의 노후는 곤고한데 경박단소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다.   

 

화, 목, 토요일마다 투석받는 저 야윈 노인과 아들 사이에 어떤 근원을 알 수 없는 인연이 있어 구리시의 한 병원 인공신장실에 같이 있는가?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굵은 주사 바늘 2개를 4시간 동안 왼팔에 꼽고서 붉은 피가 펄떡이는 노출된 혈관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12시 20분, 조미료와 소독약 냄새가 뒤엉킨 침대에서 환자용 밥을 먹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김치를 찢어준다. 침대에서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는 것 조차 힘에 겨울 때, 어느 날, 아들은 그 옛날의 형식으로 본가입납을 쓸 것 같다. 되돌아 갈 수 없고 만들어 질 수 없는 그 때의 모든 것들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 본가입납의 기억들이고. 그것들이 아들에게 소중했었고. 행복했다고.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다고 했다. 아버지의 인생이 가까이에서는 슬프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자의 삶은 기구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으로 그것은 다 정상적인 삶이다. 노인의 삶에 비정상은 없다. 본래대로 사는 것이다.

 

2010.6.27 정산 




이종민 아버님께서 힘드신 거구나.....할 일을 다해라.
[2010-06-29]
정산 잘 지내지?
신장은 뇌, 심장과 더불어 3대 바이탈 오가닉이다.
신장이 나빠지는 것은 당요, 고혈압, 비만 그리고 기타 등등
병원 부속 인공신장실에는 총각부터 내 나이 쯤의 아저씨, 아주머니, 아버지 나이 쯤의 할아버지, 할머니등 50 여명이 일주일에 3번씩 내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폭우, 폭설, 혹서, 혹한에도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그들의 보호자는 서로 서로 친구가 되었고, 간호원들은 다 들 친절하다. 소방관들을 영웅이라 하는데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말없는 성자들로 보인다. 토요일 오전에만 들르는 나는 뻘쭘한데 요즘에는 내가 성자들에게 먼저 인사한다.

아버지를 보면서 어리고 단순해지던 시절로 돌아간다.
희미해지는 기억의 바다에 빠진다.
기억의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2010-06-29]  
정제용 어머님 생각이 들 때면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형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 장의 빛바랜 흑백의 사진을 오버랩하며 봅니다.
[2010-06-29]
정산 아우님, 깊은 슬픔은 오래 간다고 합니다.
산에 가고, 예전 처럼 웃는 모습에서도 어머님과 급하게 이별한 슬픔을 봅니다.
삭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시간의 흘러야 치유가 된다고 합니다.
어머님 생각이 자주 많이 드는 것은 "좋은 이별"의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합니다.
[2010-06-30]  
찬내 본가입납이 맞는 표현인지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러보게 되었네요..
아는 사이도 아닌데 이런 글 읽어도 되는지 실례가 아닌지요..
저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게 하는 공감가는 글이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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