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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scellenous essay - 허접한 수필들


  
 정산(2008-09-29 22:02:21, Hit : 3566
 슬프지 않은 단성사 悲歌

슬프지 않은 단성사 悲歌

 

- 특이한 이름은 그 역사를 암시한다. 00극장이 아닌 단성사(團成社).

그 단성사가 부도났다. 부도가 났지만 영화관의 영사기는 돌아간다고 한다. 주인이 바뀐 단성사는 굴곡진 운명을 또 맞는다. 매스콤은 102년 한국영화사의 상징 단성사 '치욕의 날이라 한다.
 

국내 최초 상업 영화관 단성사가 23일 15억원의 당좌를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102년간 한국 영화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던 단성사가 치욕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1907년에 설립된 단성사는 한국 영화의 산 증인이자 상징으로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다. 1919년 10월 27일 국내에서 제작된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상영됐으며, 1926년 춘사 나윤규의 '아리랑', 1935년 '춘향전' 등 일제 강점기 속에서도 한국 영화와 함께 했다.

단성사의 최고 전성기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다. '역도산'(1965년), '겨울여자'(1977년), '장군의 아들'(1990년), '서편제'(1993년) 등 당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들 모두 단성사에서 기쁨을 맞이한 작품들이다. 큰 규모의 개봉관과 전국 스크린 수가 절대적 열세였던 당시에는 단성사의 흥행 성적이 곧 전국 흥행을 의미하기도 했을 정도. 때문에 영화 관계자들은 개봉일 단성사 관객들의 반응으로 성패를 가늠하기도 했다.

특히 단성사를 필두로 피카디리, 허리우드, 서울극장 등 인근 극장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며 '영화 1번지 종로'의 명성을 쌓아갔다. 하지만 역사의 단성사의 세월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극장가에 바람을 몰고 온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장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울극장만 재빠른 대응으로 시대적 흐름을 함께 했을 뿐이다.

단성사를 비롯한 대한극장, 피카디리, 씨네코아, 스카라 등 종로, 충무로 인근의 대형 극장들은 뒤늦게 따라갔다. 대한극장은 2001년도에 멀티플렉스로 재개관, 피카리디는 2004년도에 재개관했다. 단성사는 이보다도 늦은 2005년 지상 9층, 지하 4층 건물에 총 7개관 153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로 변모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영화 1번지'의 명성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피카디리, 서울극장, 단성사 등 화려한 멀티플렉스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은 CGV, 롯데 등에 밀려났다. 지난해 110억원의 손실 기록 등 계속해서 영업난을 겪어 왔고, 결국 치욕스런 날을 경험하게 됐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황성운 기자

 

 

-오래 전에 전화를 받았다. 극장협회 간부인데 내일 오후 1시까지 단성사로 와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약속한 대로 가니 영화관 설계에 대한 몇가지 문의가 있었다. 그때 나는 영화관과 호텔이 한 건물에 있는 복합건물의 설계를 끝내고 감리를 하던 때였었다.

칠순이 넘은 단성사 사장님은 정정하고 유머가 많았던 멋쟁이셨다. 극장 제일 위층의 사무실을 운동 삼아서 걸어 오르는 걸 자랑으로 이야기하고, 대형 포스터를 그리는 직원을 격려하고. 커피를 가져오는 아주머니를 정겹게 핀잔했다. 오전에 결재하고 3시에 퇴근하는데 영화관 사장이 저녁 6시까지 있을 이유도 없었다고 했다.

구내 식당에서는 식사비를 500원 받는데 공짜로 주면 고마움을 몰라서 최소한도만 받는다고 했다.

자문에 응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서편제 영화티켓 10장을 편지 봉투에 담아 주셨다. 인상적인 답례였다. 그때가 1993년도. 영화 "서편제"가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던 때였다. 단성사 단 한 곳에서 196일 상영하면서 1백만 관객을 동원했었다.

 

5분40초 동안의 롱테이크로 유명한 서편제를 그 티켓으로 보았다. 감동은 충격이었다. 소리와 장면의 절묘한 어울어짐은 임권택 감독의 역작중의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미스춘향 오정해가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고, 김명곤의 노래와 연기에 주목했고, 정일성 감독의 화면과  김수철의 국악에 매료 되었다. 한동안 영화감독 임권택과 원작자 이청준은 우리의 자부심이 되었다.

 

임권택은 유봉을 통해 계속되는 방랑과 가난 속에서도 소리를 지키려는 고집을 보여줬고 눈이 점점 멀어가는 송화를 통해 '한의 소리'를 담아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가 그리웠던 동호를 만났음에도 '한을 다치면 안 되기에' 이름도 부르지 않으면서 그냥 떠내보낸 것은 안타까운 소리꾼의 숙명을 그대로 보여줬다. -오마이뉴스 임동현의 글

 

그리고 이청준 원작에 오정해가 출연한 영화가 연이어 만들어졌다.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는  천년학이었는데 속편은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는 속설을 가감 없이 증명했다. 서편제가 1993년, 천년학이 2007년, 14년뒤의 관객들은 천년학을 외면했다.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에 매스콤만 요란했다.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는 너무 안일하고 비겁한 선택이라고 어떤 평론가는 말한다. 동감한다.

원작은 이청준의 남도사람 연작이었다. 유장하게 펼쳐지는 장면들은 토속적인 한을 무겁게 감내하는 인간들의 숙명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가슴은 꽉 맑힌 듯 했다. 이청준을 경외했다.

70을 넘긴 노 감독이 80을 넘긴 촬영감독과 마흔을 바라보는 여배우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데  원작자는 이제 없다. 70이 되기도 전에 폐암으로 올 여름에 바닷가 고향 땅에 묻혔다.

 

- 10여년 전에 복합상업 건물내 영화관 견학을 목적으로 홍콩에 출장을 갔다. 미국의 AMC가 운영중인 영화관은 한 건물에 상영관을 여러 개 두었고, 바닥 경사를 급하게 하여 앞 사람의 뒷통수가 뒷사람의 시선을 가리는 종래의 영화관의 단점을 개선하고, 의자가 푹신하했다. 피난, 소방, 음향, 영상, 냉, 난방설비 등이 차별화되었다. 커다란 상업건물에는 멀티플렉스가 앞다투어 들어섰다. 우리도 멀티플렉스12관을 설계하였다.  멀티플렉스에 밀려 옛 영화관들은 소멸하고 일부는 부활했으나 끝내 사라지는 세상의 존재태처럼 보였다. 영화는 사양산업이 아니나 영화관의 대다수는 사양되고 있었다.

 

빛이 차단되고 최소한도의 조명만 있는 특별한 공간에서 우리는 영사실에서 투사되는 빛의 조합에 일희 일비하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숨죽이고 환호한다. 중간에 필름이 끊어지면 뽀뽀타임이라 했고, 빨리 필름을 돌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우리의 체열로 내부는 더웠고, 지루한 장면에서는 졸기도 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슬픈 영화는 가설 무대에서 슬프게 보았다.

단체 관람료가 6원, 10원을 내면서 4원의 거스름돈을 유용하게 썼던 기억의 초딩시절, 1원짜리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던 고향마을 영화관, 돈많다고 소문난 영화관 주인 딸 이름은 박안나, 우리 학교의 제1의 공주였다. 그게  왜 기억나지?  영화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호텔이 들어섰었다.

영화가 끝나고 문이 열리면 바로 큰 길가 보도여서 바깥은 역시 눈부신 세상이었다. 바깥에서 문틈으로 훔쳐 보는 재미와 들키면서 기도(?)형들에게 맞는 꿀밤들이 이제는 없다.

 

소멸하는 것들이 가을과 함께 애잔하다.

단성사는 사라지는 것들의 함축과도 같아 보였다. 그때 단성사에서 나는 서서히 멸실을 예고하는 근대의 건물을 보았고, 사무실로 오르는 목조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안스럽게 들었다. 사장님은 쾌활하였지만 주위의 것들은 힘겨워 보였다. 상업자본의 수혜자는 곧 피해가가  되어야  했다.  전성기, 좋은 호시절은 30년 정도였다.

감상들이 단성사에서 시작되어 서편제로 그리고는 이청준으로 오버랩되면서 페이드 아웃된다. 사라지는 초딩의 기억들은 감상이고, 부도난 단성사는 현실이다. 감상과 현실은 같이 있다.

 

이제 단성사와 이청준이 있어 우리는 행복했었노라 라고 말해도 된다. 단성사 悲歌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2008.9 .29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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