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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Miscellenous essay - 허접한 수필들


  
 정산(2009-02-26 13:48:16, Hit : 3450
 워낭소리

워낭소리

워낭소리

 

청량사에 힘겹게 올라서 하늘을 향해 솟은 탑 앞에서 두 노인은 죽은 소의 극락왕생을 빌어 준다. "잘 가거래이~, 극락왕생 하거래이~ "

봉화군 깊은 산골마을, 상운면 하눌리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시종 진양조의 흐름이다. 빠른 속도에 익숙한 세상에서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순제작비 1억원, 37일만에 100만명 관객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신기원을 세웠다고 매스컴은 요란하다.

 

하루의 농사일을 끝내고 귀가하는 노인은 소가 끄는 리어카에서 졸고 있다. 노인과 소의 표정은 이 영화의 이미지를 함축해 보여준다. 몸으로 모든 걸 다 감내하는 말없는 삶.

소가 주인과 30년 이상을 함께 했다는 것은 놀랍다. 노인은 늙고, 병들었고, 소도 늙고,병들었다. 

감독은 우직, 묵직, 듬직한 소와 아버지의 부성을 그렸다고 한다.

농경의 풍경이 저물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이 곤고하다.

 

추석에 대처로 간 자식들이 명절을 쇠러 온다. 자식들은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늙으신 아버님이 농사를 그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농사를 그만하도록 하기 위해선 소가 없어야 한다고 한다. 소를 팝시다. 아버님! 소를 팔아요.

삽겹살 타는 연기는 마당에 깔리고, 화목한 추석 풍경속에 아버지는 마루에서 말없이 담배만 피운다.

 

 

화면은 느리다.

소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자 노인은 코뚜레를 끊고 소를 놓아준다. 소의 자유, 자유는 소의 죽음이다. 소는 보통 소들의 2배를 살았다. 노인을 동반했던 축생이 구덩이에 죽은 채로 묻혀지고,포크레인이 흙을 뿌린다.  

밭 옆, 나무, 긴 그림자 아래에 소를 보낸 노인이 망연히 슬픔에 잠긴다.

 

 

영화같지 않은 영화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순수를 화면 가득히 채운다-손택균, 조종엽 기자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답을 하게 하는 영화다-황상민 교수

노인과 소의 관계를 통해 삶의 따뜻한 정서를 화면에 담아내고 싶었다-이충렬 감독

워낭소리는 정통 다큐에서 벗어났다는 비판도 있고, 다큐의 고정 관념을 깼다는 찬사도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를 떠 올렸다.

우리들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아버지인 우리들.

가부장의 근거인 농업이 이제 왜소해지는 풍경속으로 가고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문재가 4년전에 쓴 글을 읽는다.
 

...아버지는 1909년생이고, 나는 1959년에 태어났다. 1989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는 20세기를 고스란히 관통하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전근대의 끝에서 식민지를 거쳐,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그리고 근대화 시기를 통과해 20세기 말엽에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너무 많은 시대’를 살다 가셨다. 아버지는 평생 농부였지만, 농부였다고 해서 저 시대와의 불화로부터 멀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근대는 거의 주입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옷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는 평생 한복을 고집했다. 양복이 아예 없었다. 아버지의 옷에서 근대는 중절모와 구두까지만이었다. 몇 해 전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한 적이 있다. 아버지에게 과연 ‘나’라는 것이 있었을까. 사회적 자아는 있었을지언정, 개인적 자아는 거의 없었을 것 같았다. 저 프로이트가 말하는, 서구 사회학과 심리학이 말하는 ‘주체’는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전자는 전적으로 조선왕조의 유전자였다. 농경 공동체 문화, 가부장적 문화, 남성 중심적 문화를 그대로 전수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지막 아버지였다. 물려받은 대로, 물려줄 수 있었던 마지막 아버지.

그러고 보니 나는 마지막 아들이자, 최초의 아버지였다. 나는 마지막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은 마지막 아들이었지만, 물려받은 것을 내 아들딸에게 물려줄 수 없는 최초의 아버지였다. 이 사태는 매우 분열증적이다. 아버지는 족보로부터 시작해 관혼상제 일체를 고스란히 내게 전수했지만, 나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차례와 제사가 아파트로 들어가고, 돌잔치나 결혼식, 이제는 장례식까지 ‘서비스 업체’에서 도맡는다. 특히 아버지의 권위. 내게는 아버지가 누렸던 권위가 전혀 없다. 나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좀스러운 남편이고, 아들딸의 핀잔 앞에서 속수무책인 허약한 가장이다.

한때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적이 있다. 저와 같은 캠페인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최초의 아버지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역할모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근대화 프로젝트는 눈부셨지만, 그리하여 가족을 해체하고, 나고 자란 농촌을 버리고 모두들 거대도시로 빨려 들어갔지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그 새로움에 적응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들딸은 아들딸대로 ‘황무지’에 놓여졌다. 산업사회와 가족 사이에는 엄연한 시차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차를 좁히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전무했다. 국가가 주도한 근대화는 국민들을 모두 도시로 끌어들여 놓고는 방치했다.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 구성원은 ‘산업전사’일 따름이었다.

3년이 지나면, 아버지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된다. 쉰. 그때 나는 또 한 번 아버지를 놓고 심하게 앓을 것이다. 나이 쉰에 나를 낳아놓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뒤늦게 둘째아이를 낳았을 때, 내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분만실 앞에서 나는 손을 꼽고 있었다. 둘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러니까 앞으로 25년을 더 벌어야 하는구나, 60대 중반까지 죽어라고 일을 해야 하는구나라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푸른빛을 띠던 아버지 손등의 힘줄이 눈에 선하다. 늘 수염에 가려져 있던 입술 왼쪽의 작은 혹도 떠오른다. 큰 코에 유난히 깊고 그윽했던 눈매며, 지포 라이터에서 나던 휘발유 냄새도 또렷하다. 두 아이는 나에게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나는 두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물려받았지만, 물려줄 것이 별로 없는 최초의 아버지는 고단하고 외롭다.

 

워낭소리는 맑고 투명하다. 워낭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면 그곳에 있어야 할 아버지는 이제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노인과 소가 불쌍하다고 울었고, 아내는 깡촌의 노인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나는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프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슬프게 바라보지만 어쩌지 않는다.

 


2009.2.26 정산




비오필리에 시종 잔잔한 흐름속에서 온 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늙고 병들며 죽어가는 소의 모습이 의외로 담담하더군요.

왜일까요 ?

살아간다는 것이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내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구요.

언젠가 형님과 함께 청량사 가보고 싶네요
[2009-03-05]
정산 오늘자 인터넷 신문에는 노인의 자식들이 졸지에 불효자가 되었다고 고통스럽다고 합디다.
노인의 원하는 삶은 도시의 자식과 함께 지내는 게 아닐텐데 관객들은 노인이 안스러웠나 봅니다.
아버지와 함께 지내지 않는 저도 그런 비난을 들을 것 같습니다.

언제 한번 갑시다. 청량산 도립공원과 청량사...
봉화 석개재에 내려 서던 낙동 2구간, 푹푹 찌던(?) 땜빵이 생각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200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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