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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Miscellenous essay - 허접한 수필들


  
 정산(2009-08-20 12:20:32, Hit : 3458
 죽음1,2,3

죽음1,2,3

죽음 1, 2, 3

1월 1일 새해 아침 9시12분 믿기지 않는 사고사를 통보하는 후배의 전화는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신정 연휴를 송두리째 헝클어 놓았다. 처의 허망한 죽음의 과정은 느리고 모호했는데 그 후의 과정은 신속하고 명료했다.

열심히 살았던 증거가 현재하는데 그녀는 부재하고 그 부재는 산자들의 고통을 선명히 예고하고 있다.
 

벽제의 승화원은 7개의 화장로에서 16개가 증설되어 내부 공간이 복잡해졌다. 접수에서 운구, 안치, 화장, 분골의 시퀜스가 복도가 꺾이는 곳에서 해결난망으로 이어졌다. 중정의 일부도 복도가 되고, 일부는 흡연자의 의자와 하늘을 가리는 구조물로 관념의 공간에서 그저 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예약된 고인들이 동시에 불속으로 질서있게 들어가고, 망연한 사람들은 울부짖는 사람들에 의해 슬퍼지고, 찬송과 독경가 혼재하는 복도는 좁고 시끄럽다. 관망창 앞에서 유족이 울고, 그 뒤에 발뒤꿈치를 들고 친지들이 무표정한 스텐레스 문을 보며 그 안의 맹렬한 화염에 속수무책인 고인들을 상상한다.

 

대기실의 전광판에는 불길에 든 고인들의 이름과 잔여시간이 디지털화하고, 립싱크를 하는 초미니의 S라인 가수의 율동이 TV속에서 줌업과 줌 아웃으로 디지털화하고 있다. 화장실 양변기 부스의 벽에 있는 낙서는 "부모님께 잘 합시다" "싸가지 있는 며느리가 됩시다"

자연사는 예측가능하고 사고사는 특수성에 따르는데 화장장에서 자연사와 사고사는 같다.

죽은자가 냉동창고에서 뜨거운 불속으로 가서 형해화되는 시간에, 산자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복도에서 살아감의 막연함과 두려움을 망연해한다.

 

8월12일 정완이 처가 대구에서 병마와 싸우다 갔고, 다음 날 13일 철수가 울산에서 심장마비로 갔다. 두 죽음은 오후와 그 다음 날 새벽에 연이어 있었지만 연관성은 없었다. 정완이 처의 부음은 월파와 술을 마실 때 들었고, 철수의 부음은 다음 날 술이 깨면서 숙취와 기갈속에서 들었다.

 

8월 13일 저녁, 대구, 지하1층은 주차장, 그 아래 지하2층의 천주성삼병원 장례식장에 친구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남편은 임종을 보지 못했고, 처는 죽는 줄 모르게 죽었다고 한다. 조문을 하고 울산으로 갔다.

 

14일 밤, 발인을 위해 심야버스을 타고 대구에 간다. 흙표흙침대, 새로넷 인터넷, 취업1위 금오공대의 간판과 모텔의 네온사인속에 도시는 몽롱하다. 강변도로를 질주하는 심야 택시는 "당신은 날 울리는 땡벌~, 땡벌~" 이 요란하게 뽕짝거리고, 미터기의 요금이 심야 고속버스의 요금에 근접할 때 쯤 택시에서 내린다.
심야시간에 빈소는 파장의 분위기다. 사람들에게 지친 유족들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베개 삼아 눈을 붙이고, 젊은 아이들은 크게 하품하고, 중년들은 고스톱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다.

 

혼자서 차곡차곡 슬퍼한다. 차곡차곡은 차와 곡차를 번갈아 마시는 것인데 차곡차곡하니 죽은 자에 대한 정한과 산자에 대한 비애가 교차된다. 그녀는 위암으로 고생하다가 폐렴으로 갔는데 남편이 비틀거린다.

접객소의 이미테이션 무늬목 비닐 장판에는 쑥부쟁이가 밖혀 있다. 보라색 쑥부쟁이는 쓸쓸해 보였고 천장에 2열로 도열된 삼파장 램프는 무심해 보였고, 에어컨 냉기는 차가웠다. 코카콜라 냉장고 안의 음식과 음료들도 파장의 시간대에 쓸쓸해 보였다.

나는 위로의 말이 없어 친구에게 오늘만큼은 여기에서 의연하라고 한다. 슬픔을 넘어서려면 세월이나 풍화 같은 시간의 속을 지나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고인을 옆에 두고 아침 밥을 먹는 것은 고역이지만 고역을 통과해야만 오늘 고인을 보낼 수 있다. 신발집게는 마지막 조문객이 올 때까지 제 소임을 한다. 우리는 화장장까지만 배웅하고 울산으로 간다. 발인이 공교롭게 8월15일로 같은 날이다.


인산병원 장례식장에 딸이 아빠의 영정을 들고 스님이 발인의 예식을 진행한다. 아빠는 친구의 처를 조문하기로 한 날 새벽에 졸지에 갔다. 많은 조문객들과 많은 조화속에 미경험의 일들로 3일이 지났다. 아프리카에 자원봉사 하러 간 작은 딸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관을 우리가 운구하자 친구의 처는 오열한다. 운구차는 친구가 4일전까지 운영하던 약국에 잠시 머물다 화장장으로 간다. 구릉지에 협소하고 열악한 화장장에서 별다른 의식없이 화부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내화벽돌의 잔열이 남아있는 화장로로 친구가 들어가고, 철문이 닫히고 스위치가 켜진다. "친구야! 불 들어간다. 빨리 나와라"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다. 유족과 친구들은 나무아미타불을 독송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2시간후에 화부는 백골을 빗자루로 쓸어서 바케츠에 담고 분쇄기로 가루를 만들어 한지에 싸서 납골항아리에 넣어 유족에게 건넨다. 30년 지기가 하얀 뼈가루로 바뀌었다.

 

경주 근교의 야산에 있는 사설 납골당은 좁고 어두운 길을 통해 절대와 침묵하는 공간, 엄숙하고 경건한 공간이 아니다. 1층엔 납골당이 4단, 5단이 로얄층이라 다 팔렸다고 한다. 가로,세로, 높이 30센티의 용적이 300만원이고, 큰 것은 작은 것의 두배에서 100만원을 빼 준다고 한다. 불친절하고 무례하지는 않지만 씁쓸하다. 안치를 하고 친구들은 폭염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며 사설납골당의 대단한 수익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49제를 지낼 곳에 영정을 두고 발인을 끝냈다. 친구가 생(生)에서 완전히 몰(沒)로 변경되는 시간속에서 슬픔은 작게나마 나누어지고 소멸되는 듯 했다.

 

유족들과 헤어지고 친구들과 한 잔했다. 친구를 처음 만난 게 30여년 전, "세설집"에서 선배들의 열정적인 세설을 들으며 곱창 건데기는 못먹고 김치와 육수를 계속 추가하던 대학 1학년 가을과 겨울, 그의 어머님이 차려주신 아침밥의 기억도 그와 같이 있다. 2년전에 서브4를 했다고 자랑하던 들뜬 목소리는 영원히 들을 수 없다. 그가 꿈꾸던 개인 세계는 절멸되고 남은 자에게 좋은 세계를 부탁한 형국이 되었다.

서울행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중년의 죽음은 예측과 관계없이 몰(沒)로 졸(卒)로 황망하다. 각각의 일상이 누적된 총화가 죽음처럼 되어 버린 무거운 마음에 알몸으로 와서 한 바탕 봄 꿈을 꾸고 알몸으로 소멸하는 길을 배웅하면서 남은 자들은 죽은 자의 어제와 산자의 내일을 연민한다. 배우자의 몫과 역할은 산자에게 나눠질 수 있을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죽음까지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이 거역할 수 없는 사실의 인식으로 내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음 날에 신부전증의 아버님께 조혈호르몬을 주사하러 아버님댁에 들르는데 아들은 시간 속에 풍화하는 분명한 자연현상을 보면서 담담하다. 지천명은 무너져 내리는 모든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18일 김대중 전대통령이 영욕과 포폄을 안고 갔다.

네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간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인데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과도 같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

어느 날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첫째가 냉정히 거절하자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하면서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고 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셋째도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다." 라고 말했다.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는데 넷째는 다소곳하게 말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간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한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한 것이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의미하는데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다.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한다.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한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인데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이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던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2009.8.20 정산

 




명사십리 아마 2006년도부터일 겁니다.그때 저는 거의 매일 정오 경에 원터에서 청계산엘 올랐지요. 남들이 점심먹으러 내려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몇 달 전까지 10여 차례 마주친 사람이 있습니다. 마주침 회수가 그보다 더 되는지도 모르고 그에 못 미치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 사람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는 원터쯤에서 나와 마주친 후 산을 내려가고는 했는데 운동량에 비해 배낭이 너무 크고 어깨끈이 너무 긴 거예요. 서너 번 마주쳤을 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그는 환자라구요. 저는 그를 불러 세워 가방을 작은 것으로 바꿀 것을 권했습니다. 아님 어깨끈이라도 줄이라구요. 그는 고맙다며 산을 내려갔습니다. 그후 저는 그와 여러 번 마주쳤지만 아는 내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쯤..그와 그의 아내와 친구인 한의사와 한의사의 동행(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알게 되었지요)이 함께 원터골약수터를 지나 매봉으로 갈 때 다시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는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반가워 그의 아내에게 물었지요.여러번 산에서 마주친 사람이라고.. (병세가)좀 어떠시냐고... 그의 아내는 담담하게 그러나 밝지 않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에게 힘내시라고 우리 식의 힘!!!! 을 외쳐주고 헤어졌지요. 그가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여서 기뻤습니다.
오늘 [면앙정...]과 기탄잘리 수잔 콜라나드가 지은 [인도]와 자리를 가방에 짊어지고 압구정 둔치에 갔더랬습니다. 네 시간 동안 조용히 놀았지요...뜨거운 해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을 때, 굳은 허리를 펼 겸 일어나 앉았는데 낯익은 사람이 잔디 안쪽에 만들어진 조깅트랙을 힘없이 걷는 거예요.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지요. 그였습니다. 그가 제 앞을 스쳐 10미터, 11미터, 12미터로 멀어지는 겁니다.
[2009-08-24]
명사십리 뛰어서 가자니 정말 그인지 확신이 안 섰습니다. 좋은 확인도 아닌 듯하여 수선을 떨고 싶지도 않았구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그를 따라가봤습니다.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였습니다.
청계산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개월 전보다 5킬로그램 이상 더 수척해져있었습니다. 병세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도 청계산에 가느냐... 불안하고 의아한 눈빛으로 그가 대답했습니다. 간다. 이틀에 한 번... 이틀에 한 번은 너무 잦다. 힘에 부칠 것이다... 2,3년 전에 가방이 너무 크다고 작은 것으로 바꾸라고 한 사람을 기억하느냐...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이 나다. 전보다 지쳐보인다.... 맞다 요즘 많이 힘들다....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그는 천천히 걷고 저는 그의 보폭에 맞게 패달을 밟았습니다. 집이 압구정동인 모양이다.... 맞다 바로 이 앞이다....
저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의 아내나 그를 돌봐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그를 주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이지요. 그가 그 정도의 거리를 혼자 다닐만한 건강을 가졌다는 뜻이니까요...그와 헤어지고 나는 수 분 후에 <만남의 광장>이란 돌 옆에 깔았던 자리를 접었습니다.
[2009-08-24]
명사십리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눈으로 그를 쫒았습니다. 그는 맨손체조를 하고 조금 더 걷다가 제가 가방에 물건들을 챙겨넣는 사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감쪽같이.... 그 쯤 주차장에서 자동차 한 대가 시동을 건 듯도 하였습니다.
그의 옆얼굴에 파란 실핏줄이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그도 곧 그 세계에 편입할 것입니다. 그를 처음 청계산에서 만난 시점은 제가 어머니께 산행을 권해드리던 때였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마친 후 어머니는 집 앞 텃밭과 뒷산의 바람받이에 심어놓은 배나무를 힘에 부치게 돌보고 계셨던 터였지요. 어머니는 인사 삼아 집 뒤 산을 몇 번 올라가시고 산엔 더 오르지 않으셨습니다. 그와 어머니가 같은 짐을 짊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컸었나 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계산에 오르면 그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의 남은 가족과 그 세계에 편입하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2009-08-24]
정산 산에서 만나고, 한강 둔치에서 만난 게 묘한 우연이네요.
어머님이 투영된 그 환자분이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2009-08-26]  
정제용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며 받아들이고 계시는군요

형님의 글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며 나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장흥에 가서 돌아오는 길에 도봉산의 오봉을 바라보았지요

비 오는 날 아침 오봉이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있던 그 날 ...

다시 바라 본 오봉은 내가 보았던 그 때 , 그 모습과는 많이 달랐답니다.

추억을 가슴 속에 담는 일 , 그리고 그것을 펼쳐보며 지금의 나를 생각하는 일

그러면서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일.. 감사할따름입니다.
[2009-08-27]
정산 장송행렬은 짧아 지아비는 亡婦를 그리지 못하고, 지어미는 亡夫를 못보낸다.
삶에 싫증날 겨를도 없었을텐데 서둘러 마감한 이유를 간 사람만 알고 있소.
난 오랜 여행에 지친 몰골로 깊은 잠에 빠지고, 며칠 후 병원을 핑게로 5일 동안 잠만 잤소.
영원한 안식에 든 그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안식없이 우리는...어려워도 좋게(?) 살아야 겠지요.
[200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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