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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Miscellenous essay - 허접한 수필들


  
 정산(2009-10-19 16:45:05, Hit : 3585
 소시민의 건축

소시민의 건축

 


소시민의 건축

좋은 가을 날씨에 상량식이 있었다. 건축주가 간소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공사에 관계했던 사람들이 절을 하고 봉투를 놓았다. 감리자와 현장소장과 목수 오야지, 철콘 사장, 전기 사장님들이 덕담을 하고, 나는 관찰자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콘크리트 건물의 상량문은 최상층 스라브 하단과 스치로폴 사이에 넣어졌다.


입주상량응천상지오광(立柱上樑應天上之五光), 입주상량비지상지오복(立柱上樑備地上之五福)

 

지신(地神)과 택신(宅神)에게 제사 지내는 상량날에는 공사를 쉬고, 이웃에 술과 떡을 대접한다. 재료와 도구와 공법이 변해도 치성을 드리고 기복하는 마음으로 창맹(蒼氓)들은 경건하다.

봉급쟁이로 펜대만 굴려 밥벌이를 한 건축주와 건축 현장 따라 떠돌이 생활로 밥벌이를 한 시공자가 이곳의 도토리같은 건물들을 비교하며 덕담을 한다.

자기 집을 짓는 사람이 1%쯤 될까요? 선택받은 1%지요. 현장은 서로 다른 가치와 욕망을 유보하고 하루를 쉰다. 

50살이 넘어서 집 짓지 말라고 한다. 집짓는 일은 진을 빼는 고역이다. 임어당은 이발을 하면 하루가 행복하고, 새 집을 가지면 한 달이 행복하고, 결혼을 하면 1년이 행복하다고 했다. 한 달 동안 행복한 집과 몇 달 동안 고생한 집을 '소시민의 건축'이라 칭한다.
 

3층 규모의 상가겸용 주택은 천편일률로 경사지붕을 강요한다. 신도시에서 시작된 규제는 20년이 지나도 그 유효함은 여전하다. 담장이 없어지고, 골목길이 없어지고, 거기에 비치는 그림자가 없고, 거기에서 노는 아이가 없게 만들었지만 그 유효함은 작은 건축을 선도했다고 믿는다. 각각의 필지에 각각의 주차장과 각각의 빈약한 조경을 별도의 한 곳에 묶을 가능성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그 옆 공터에는 공사판 인력 알선을 광고하는 홈페이지(www.04816.com)주소가 인쇄된 승합차가 저렴한 옷을 팔고, 철제 컨테이너로 만든 함바안에는 커다란 선풍기가 흙바람을 일으킨다. 함바의 여주인은 직영잡부와 다른 잡부를 명확히 구별하는 눈썰미로 밥장부를 까탈스럽게 확인한다.

경사진 아나방에 질통을 지고 가는 잡부를 풍경처럼 추억하는 관찰자에게 10여 군데 공사 현장은 정치하게 작동하는 기계로 보인다. 현장엔 고단한 일상의 소시민들의 다양한 모습이 있다.

중년의 부부는 리어카를 끌고 밀면서, 현장에서 나오는 고철을 수집하는 낮의 삶을 끝내고, 야방을 시작하는 밤의 삶을 반복한다. 고철을 찜하는 것과 야방을 서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행위이다.  

지게차 주인은 졸면서 대기하다가 짐을 부리라는 연락을 받으면 한 번에 4만원씩 받고 지게차를 운전한다. 거기에 다른 지게차는 올 수 없는 영역권이 존재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많고, 눈치보는 사람도 많은 현장에는, 자식자랑, 돈자랑, 젊은 시절의 무용담이 풍선처럼 커진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매매, 전세, 월세를 매개로 '소시민의 건축'에 관여한다. 건축주는 건축주끼리, 소장은 소장끼리 계층별로 소시민이 된다. 

오후 5시30분, 현장은 정지한다. 해가 있어도 하루가 끝난다. 욕을 해야 건축주와 시공자의 명이 서는데 위악같은 감정의 단어들이 5시 30분 이후에는 없고 적막강산처럼 된다.  

관찰자에게 현장은 지엄하고 경건한 소시민들의 일상이 이룩하는 경이로운 세계였다. 건물이 신생하는 옆 공터에는 가을 들풀이 바람에 말라 가고 있었다. 

 

 

 

 

 

시간속에서 주거의 풍경은 남루하게 유전한다. 환기와 채광, 통풍의 사각지대에 곰팡이는 왕성하게 서식하고, 철판은 제몸을 풍화시키는 부식으로 시간을 증거한다.  해 있는 날에 햇살은 젖은 빨래속으로 스미고, 녹슨 철판은 빛을 퉁기지 못해 빛과 시간이 화해하며 사라지는 건축을 돕는다.  

한 때 건축 외장재로 녹슨 철판이 유행했는데 신생의 경박함을 시간의 묵직함으로 치환한 듯하여 많은 건축가들이 다투어 좋아했었다. 내후성강판의 녹을 좋아한 게 아니라 녹슨 색을 좋아한 것 같았다. 녹의 본질, 시간과 영원이 어쩌구 저쩌구 했지만 실은 녹의 색과 겉멋을 건축주에게 설득했고, 관찰자도 몇 번 그렇게 했었다.
 

 

들판의 기억이 사라지는 공터에 지어지는 '소시민의 건축'은 욕실과 주방을 크게 바꾸었다. 천장에 샤워기를 설치하고, 세면대를 선반처럼 놓고, 그래야 당분간 사라지지 않는 '소시민의 건축'이 된다.

디지털 시대엔 아침식사를 하면 하루가 행복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면 한 달이 행복하고,  자동차를 구입하면 일년이 행복하다고 한다. 아파트가 선도하는 디지털과 그린과 친환경을 뒤따르면서 '소시민의 건축'은 한 달의 행복을 담기 위해 경쾌한 선택과 밝은 행보를 취한다.

 


 



 

건축은 시간에 밀려 소멸하고 소멸하면서 살아 남는다. 덧없는 대중의 유행가 같은 건축, 부나비 같은, 찌라시 같은 건축이 지어지고 사라진다. 

관찰자는 창맹과 속물을 경원하고, '소시민의 건축'을 비웃은 적이 있었다. 우뚝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경외가 일상의 것들에 앞섰는데 곰곰 생각하면 그것들이 일상의 것과 무에이(?) 다르랴? 무엇을 같이, 깊이 보지 못하는 딱한 단견이었다. 왜곡되고 저급한 소시민의 일상을 폄훼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축이 아름답거나 추한 것이 아닐진대, 일상보다 우위에 있는 게 무어란 말인가, 좋은 건축이 좋은 삶을 이끈다는 스타 건축가의 말은 오만하게 들린다.

'소시민의 건축'은 경박하지만 경건하다. 빡빡한 일상과 지엄한 일상이 배태한 건축은 가을 들판에서 살아남는 건축으로 보인다.
 

2009.10.19 정산

 

 




이종민 근래에 들어 비웃는 버릇을 버리려 노력했다. (그래! 그 동안 참 많이도 비웃었다.) 아쉬움의 보상이 아닐까 생각도 하였지만, 나의 태도에 스스로는 수긍이 간다. 남이 그러든 말든....하는 호기를 가지기에 참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들고 비로소 가벼워짐을 느끼고 지금부터 새로이 보리라 눈이 말똘말똥해 지지만.....손이 어눌하다. 꼭 만드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어긋지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건축이라 생각이 들어 당신의 태도는 항상 마음에 든다.
[2009-10-23]
정산 하루 하루의 일상에 천착해야 하는 우리 이웃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축을 대책없이 슬프게 바라본 건 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 어느 책의 서문에 있던 첫 문장의 영향이기도 했다.
“뽑혀서 이 길에 들어섰고 훗날 나의 손에 의한 디자인으로 인류의 환경을 바꿔보겠다는 사명에 가득한 무명의 건축가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내용은 기억에 없고 서문의 일부만 기억에 있다. 한번 보고 싶다. 그 책이 지금 없는데 그 때처럼 전율하지 않을 것이다.

이호철의 “소시민”을 읽으려 한다.
60년대 거기에는 위안 없는 세월 속에 “밀려나는 소시민”과 “살아남는 소시민”이 있다고 한다.
지금, 위안 없는 세월 속에 “밀려나는 건축”과 “살아남는 건축”이 있다고 말해도 되겠지.
B.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을 들추면 공감 내용이 많고, 좋은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케 된다.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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