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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2010-01-22 19:00:58, Hit : 2413
 예술가로 산다는 것

예술가로 산다는 것

예술가로 산다는 것
 


2001년에 나온 책, -부제는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의 표지 그림은 10명의 예술가들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세상의 무관심에 그들은 무관심하며,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굳건하게 세우는 것에만 집중한다.

피상적인 몇마디로 단언하기 어려운 그들의 삶과 작업들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재독하고, 박영택의 시선에 따라 그림과 조각과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한 번 더 생각한다. 

 

건축가 류춘수는 이따금씩 오지 산골 봉화의 초가집에서 홀로 밥을 지어 먹으며 건축을 하고, 소설가 김훈은 신도시 일산의 오피스텔에 월급쟁이처럼 출퇴근하면서 작업을 한다. 사진가 김영갑은 제주에서 작업했고, 소설가 강석경은 통영의 동피랑에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나는 아침에 작업실로 나가면서 생각의 부유에서 떠돌려 하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그 가벼운 부유마져 떠돌리지 못한다. 어수선한 개꿈(?)을 꾼다. 나의 작업실은 빈한한 내 머리속으로 들어온다.

 

오지나 변방에 있는 작업실은 여유와 낭만보다는 처연함과 궁핍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래전에 양평에 있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림은 보이지 않았고, 때에 절은 궁벽과 기약없이 막막한 미래들과 그 미래를 믿는 호기들이 보였다. 돈이 있으면 그들의 그림을 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들의 폭음을 밤새도록 받아주었다. 그들은 왜 멀리에서 숨어 있는가? 그들이 자초한 궁핍과 불편은 유년의 남루와 같다. 일용한 돈이 어떻게 마련되는가? 작업 이외의 것들을 최소한도로 하여 작업의 양과 밀도를 높이려 자연속으로 스며들었나? 자연속에서 자연화 되려면 얼마의 세월을 함께 해야 하는가? 부러운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설레이며 작업실을 찾는 박영택의 여행적 감성과 미술 해설이 솜씨좋은 문장으로 가득하다. 여행기는 곽재구의 포구기행, 예술기행을 닮았고, 해설은 전시회 서문이나 비평을 닮아 수필과 교양서의 지위를 획득한 듯 하다.

처음 읽었을 때 숨어사는 작가들만 보여 그저 그런 여행기였는데, 2년이 지난후에는 미술 작품 감상기로 보였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 때는 여행을 할 때였고, 그 후엔 책을 들었을 때는 손의 신비에 관심을 가져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양평에서의 작가들도 다시 생각난다. 
 

 

고립무원으로 자신을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그들에겐 무망하다. 제도권은 그들을 냉대하거나 환대하지 않는다. 절연된 세상과 소통해야 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존재감이 우리 사회에 어떤 진동이 있다는 풍문은 없다. 기꺼이 택한 천형과 거품속의 비수가 확실하고, 그런 삶을 시종 확신하면서 간다. 흔들리지 않는다.  

책에 있는 내용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도 될 듯하다. 흑백으로, 명암에 질감에 따르는 영상들로서...김홍희의 사진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박영택은 지구상에 미처 알지 못했던 이의 치열한 삶을 보고 온 것을 깨닫으며 자신을 추스린다고 한다. 지구상에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삶들이 우리를 더욱 추스리게 한다. 그들은 각자가 화두를 품고 수도자가 되어 우리를 각성시킨다.

러시아 출신 소설가 아인랜드가 그린 건축가 하워드 로크는 법정에서 말한다. "창조자는 남을 위한 삶을 산게 아니다. 나를 위한 삶을 살았고 그럼으로써 후일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를 창조했다"고.

나를 위해 삶을 사는 그들의 이야기에 루이스 칸이 남긴 말을 덧붙인다..

"...창조란 역경속에서야 비로소 발견된다." 

그들의 창조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응원한다.

 

2010.1.22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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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 낮시간에는 이런 저런 준비로 시간을 보내고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명상에 잠기다가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고요한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형태를 좇아 작업을 시작한다. 꼬박 밤을 새워 그가 그려낸 그림은 새벽의 찬 공기와 시원한 바람, 적막속에서 탄생한다. 완전히 몸이 탈진될 때까지 긋고 문질러 이룩한 그 드로잉은 숭고하고 적막하며 견고하고 아름답다. 모든 것을 자신의 감각에 맡겨 버린 그 그림은 작업이 끝난 후에 비로소 천천히 떠오른다.

주위의 모든 소리, 냄새, 맛, 느낌들이 그에게는 모두 형태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그림을 통해 이 모든 무형의 것들이 형상화 될 수 있는 작품세계를 지향한다. 그런 것들이 형태를 갖기까지는 무척이나 고통스럽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는 그 속에서 참을성 있게 형태를 기다린다. 문학과 철학, 음악등을 접하면서 그 속에서 결정적인 하나의 형태를 떠 올린다. 그 모든 것을 단 하나의 강력하고 심플하고 결정적인 형태로 포착하려는 이 지난한 시도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너무 어려운 작업방식을 자청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는 자신이 만나고 느끼고 들으며 접한 세상 모든 것을 단 하나의 형태로 구현하고자 한다.

 

정말 보기 드문 그 같은 작가가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했다.         

김을 :
그의 그림은 어딘지 아귀가 좀 안맞고 그의 말마따나 아마추어의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바로 그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조형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혼을 찾기가 힘들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못 그린 그림을 그리기 위해 1.5미터의 막대 끝에 붓을 매달아서 작업을 하거나 거친 붓질을 즉각적으로 화면에 올리기도 한다. 어눌하지만 혼이 들어 있는 그래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찢을 수 있는 작품을 원하는 것이리라. 그림 같지 않으면서 감동적인 그림 말이다. 이렇게 보는 이의 감정과 혼을 흔들 수 있는 그림에 대한 열정은 좋은 작가들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그날 그는 내게 말했다. 가벼운 그림을 그리고 싶고, 가볍고 못 그렸지만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그의 말이 환청처럼 떠오른다.

청도 :
사실 그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절절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란 점에서 그 감동이 증폭되고 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후에 그 바다와 폭풍은 그런 의미에서 관조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작가는 그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공포를 거대한 자연의 힘과 위용 속으로 밀어 넣고 있긴 하지만 밤바다의 파도와 구름, 폭풍은 너무도 생생한 심리와 영혼의 격렬한 반향이 짙게 배어 있다. 몇 가지 순색과 급박하게 덧칠 되고 빠르게 마무리된 그의 바다와 파도 그림은 사투를 벌이면서 자신이 온몸으로  생생하게 부딪힌 육화된 바다 그림이다.

미술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이 작가의 풍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시대의 대다수 그림들이 얼마나 관념과 허위의식의 더께를 뒤집어쓰고 가식과 그럴듯한 치장으로 버무려져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는 망망대해에서 그물을 당기고 있거나 거센 파도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박정애 :
그녀의 조각은 기존의 조각과는 너무도 다르다. 하나하나의 작업들은 한결같이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담담한 사유의 결정체들이다. 과장이나 욕망으로 들끓거나 관습적인 언어로 무장하거나 기교적인 공예주의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편하고 솔직하게 느끼고 생각나는 것들을 정확하게 형상화시키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흙으로 뼈대를 세우고 입혀 들어가는 식의 조각, 뚱뚱한 덩어리와 질량감을 가진 재료를 가혹하게 혹사시키는 물량주의, 스펙터클한 연출주의, 똑같이 판에 박힌 듯한 재료연출 등의 습관화된 유형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조형연출을 찾고자 한 것이다.

쇳조각을 자르고 두드리고 동을 용접하고 잇대어 만든 그림조각들은 불에 의해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철의 중량감및 면적인 속성과 동의 부드럽고 선적인 특성이 불을 매개로 하여 조화를 이룬 것이다. 불은 철판과 동의 피부에 상처를 입히고 다양한 표정, 자취를 얼룩지게 함으로써 그림을 그리는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로 기능한다. 재료의 상반된 속성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방식은 그녀가 항상 타인에 대해 발언하고 관찰하고 관조하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좌대 위에 올라간 조각들 역시 면으로 펼쳐진 납작한 조각들이다. 볼륨과 덩어리를 지워나가면서 선이나 면을 만들려는 충동은 재료 자체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그것들은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철의 두께를 조절해 나가면서 자르고 두드려 만든 인체, 비틀린 몸의 볼륨과 가늘게 뻗은 포즈 자체는 심정적인 뉘앙스를 짙게 머금고 잇다.

 

허무하고 빈한한 인생에서 느끼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조각언어로 탁월하게 표현해 오고 있는 박정애는 기존 한국 조각계에 불문률처럼 내려오는 습관화된 조각언어를 과감하게 뿌리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각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동시에 조각은 결국 자신이 설정한 삶의 경계, 그 틀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일러준다.


박문종 :
박문종의 삶, 화력, 작품과 작업과정은 그런 면면을 진솔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이발리즘 풍의 동양화가'로 행세하던 시절을 접고 새롭게 삶의 방향을 돌린 후 먹과 동양화에 대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고집스러움, 비타협성, 뚝심 같은 것이 배어나온다. 코드화된 삶, 코드화된 화랑과 벼랑 위를 달리는 광기 사이에서 자신을 추슬려야 하는 문제가 끊임없이 작가를 괴롭히기도 한다.

벽을 하나 깨기 위해, 혹은 그것을 깰 때마다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삶의 방식은 우리의 사고와 삶이 나갈 수 있는 경계를 넓혀준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형태로 굳어진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는 것, 그러한 노력과 시도야말로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자 예술가의 전제조건이다.

염성순 :
그녀의 초기작들이 꿈을 꾸는 몽환적, 신화적 요소가 풍부한 그림들이었다면, 후기로 가면서 점차 사막 같은 삶의 풍경과 유토피아에의 열망을 보여준다. 얼핏 나르시시즘을 떠 올릴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는 밤(어둠)의 공포와 외로움과 살아 있음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려는 욕망과 초월의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그 세계는 엄격함, 냉정함, 원칙성 위에 자리한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관계에 주목한다. 인간과의 관계, 현실과의 관계, 상황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와 관계와의 사이에서 파생된 액체와 바람과 덩어리와 파편 등 막막한 진공상태와 그것을 뛰어 넘는 환상적 지평이 그녀 회화의 줄기들이다. 자신의 모든 삶이 그림으로 수렴되면서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항거하는 매우 상반된 진술속에서 그녀의 그림은 탄생한다.

정일랑 :
정일랑의 그림 속에는 흙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곱게 채를 친 다양한 종류의 흙을 접착제에 섞어 화면에 붙여 놓았다. 화면은 그대로 마당이나 논과 들이 되어 버렸다. 그 위에 소와 사람들, 내와 나무 그리고 온갖 형상들이 앉아 있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편안하게 삶을 이어가는 듯하다. 

특히 그의 그림 중에는 소의 두상이 가장 많다. 순박한 소의 얼굴을 마치 항아리 마냥 그려 놓은 그림들은 결국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는 소 혹은 새와 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보여 준다. 이 한적한 빈집에서 그는 지난 시간들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변신을 꿈꾸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땅바닥에 막대기나 곱돌로 그림을 그리듯 유년의 기억과 사회의 편린들을 그려나간다. 그의 그림에는 물고기와 새, 나무와 꽃, 소와 개, 별과 작은 집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들과 더불어 사람이 태어나고 헤어지고 죽는 삶의 모습들을 형상화한다. 흙을 바른 캠퍼스에 혼합재료나 먹으로 그려진 이 형상들은 기억의 편린들이 떠돌아다니듯 원근이 부재한 화면 속에서 부유한다.  

그에게 그림이란 이렇듯 사무친 추억들을 화면 위에 불러모으는 행위이다. 그는 강렬하고 가슴 아프게 상기되는 추억이 담긴 그 그림에 "아름다운 시간들'이란 제목을 붙여주었다. 적조한 회상 아래 돌이켜진 그 시간은 서늘하고도 담담하다.

김명숙 :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는 오로지 작업실에 칩거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이 시간과 공간이 이 세계의 끝이다. 한데 그림은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난하게 자신의 혼과 육체를 저당잡혀가면서까지 몰입할까? 마치 '단식광대'처럼.

그녀가 그리는 것은  한결같이 나무가 있는 숲과 커다란 얼굴들이다. 생명 있는 것들, 혼을 지니고 있는 것들의 신비스러운 표정을 담아내려는 것이다. 경질의 재료들인 파스텔, 크레파스, 목탄과 같은 재료들을 종이 위에 긋고 칠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가운데 그녀는 재료에 자신을 하나로 일치시켜가면서 영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세계로 온 몸을 들이 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림을 받아주는 종이 한 장의 두께는 턱없이 얇다. 그래서 다만 그 피부,그 표면에 들러붙어 절망하듯 부딪친다.

그녀의 화면은 세계 혹은 운명과 독대하고 있는 단독자의 내면 공간이고, 그녀가 그리고 있는 인간과 숲은 존재 고유의 힘을 환기시켜주면서 정신과 영혼의 지고한 상태를 꿈꾸는 존재이자 떠도는 영적인 힘을 잡아내고 그것과 호흡하려는 순간의 표정이다.

화면은 수사와 장식을 피하고 모노톤에 가깝게 색채가 제한되어 있다. 화면에 무게를 주며 단정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 효과는 특히 화면의 일부분에 집중광선을 사용하는 데서 고조된다. 화면 전체를 통제하기도 하고 낱낱의 작은 것들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화면은 긴장감과 신비감을 동시에 획득하게 된다. 늘상 어둡고 습하며 깊고 모호해 보이는 화면은 멀어져간 것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면서 운명의 비극적인 빛깔과 눅눅한 냄새를 가득 풍긴다.

 

그녀의 그림은 그림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어려운 '깊음의 세계'를 얇은 종이의 표면 위에 새긴다. 그것은 불가능한 욕망이다. 그러나 작가는 온 힘을 다해 화면에 부딪쳐본다. 육체와 감각으로 문질러진 화면은 피와 상처, 고독, 절망, 날선 신경들로 참담하다. 그리고 장엄한 절망들을 보여준다. 한 가닥 선은 그대로 자신의 육체와 감성의 혈관들이 되어 얹혀 있다. 

최옥영 :
그가 다루는 박달나무, 주목, 대추나무들은 2,3백 년은 족히 된 매우 단단한 것들이다. 오랜 시간이 깃들인 나무들은 자연히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시간은 하나의 둥근 원이다. 둥근 것은 구르게 마련이고, 그렇기에 원은 시간과 영원을 표상한다. 나이테가 둥근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최옥영의 근작은 대부분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나무 속에서 끌어낸 것은 다름아닌 시간의 흔적이란 말인가? 모든 형태들은 무리없이 자연스레 원형을 간직한 채 부드럽고 완만하게 놓여 있다. 거기에는 자연과 생명을 여유롭게 관조하는 자의 마음이 깃들여 있다. 그것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조형에 인간의 손때를 묻힌다는 것은 인간의 미적 사고라는 미명하에 자연을 변형시키거나 변질시키는 일이다.


정동석 :
멋있고 황홀한 자연풍경이나 빛과 그림자, 대기의 무쌍한 변화와 현상을 지닌 절경을 찍기 위해 모두들 명승지로 달려갈 때 정동석은 우리의 산하에 지천으로 널린 야산, 어디서나 흔한 바로 농가 뒷산이나 동네와 인접한 모든 산을 찾는다. 그저 게으르게 걷거나 오르다가 자기 키 정도의 편안한 각도에서 바짝 잡아당겨 무심하게 셔터를 누른다. 겨우 하늘이 보이는 그 공간에는 위로 끌어 올린 능선과 엇갈린 다른 능선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인간의 손길이 가혹하게 들어간 산과 자연 본래의 산들이 뿜어내는 극적 긴장이 공생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가장 평범하고 비속한 풍경, 눈길 한번 닿지 않는 비루한 풍경을 가슴 뛰도록 절실하고 아름다운 한국적인 풍경으로 만들어 놓는다.

정동석은 사진 찍을 장소가 결정되면 그곳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환경이 자신의 삶이 되고 난 후에 비로소 눈에 들어 온 대상을 찍었다는 얘기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결국 그에게 화두를 던져주는 참 존재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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