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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2010-10-07 13:31:26, Hit : 2285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는 문청(文靑)들의 통과의례였다고 한다. 로맹 가리는 1956년에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받았다.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의 변두리 하류인생의 삶과 사랑을 탐조했다. 소외지대를 응시했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1975년에 콩쿠르상을 받았다. 로맹 가리가 죽은 후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임이 밝혀졌었다. 동일인에게 두 번 수상하지 않는 상은 이상하게 되었다. 천재의 유희가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폴란드, 모로코, 알제리에서 창녀였었다. 이제는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예순 다섯, 95kg의 병든 할머니,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맡아서 돌보는 아이들 중에서 영리하고 예민하고 조숙한데, 부도덕한 것들의 슬픔을 적대하고 조롱하고 이용한다. 여든 다섯의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인생의 지침이 되고, 세네갈 권투선수 출신의 동성연애자인 롤라 아줌마가 이모처럼 대해 주고, 글을 모르는 흑인 포주 은다 아메데와 격의 없이 지낸다. 

 

처음에 나는 로자 아줌마가 매월 받는 우편환 때문에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때 쯤에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 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내가 몹시 슬퍼하는 것을 보고 로자 아줌마는 가족이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집에서 기르던 개를 나무에 묶어두고 바캉스를 떠나는 가족들도 많고, 해마다 그런 식으로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죽어가는 개가 삼천 마리씩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그녀에게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고 몇 번이나 맹세했다. 그러나 나는 금세 우편환 생각이 나서 울면서 방을 뛰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p11~p12)

 

로자 아줌마는 못생겼지만 아이들을 돌보는데 신경안정제를 먹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다 빠져 32개만 남았고 빨간 루즈를 칠한 입술은 닭똥구멍 같았다. 똥같은 인생을 살았던 늙은 창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7층을 걸어 오르기엔 너무 힘이 들고 숨이 찼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로 인해 4살을 더 먹게 된 모모는 보호 받는 아이에서 로자 아줌마의 보호자가 된다. 로자 아줌마는 4살을 더 먹은 모모에게 충분히 의지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나는 그것을 닦아주려고 휴지를 찾으러 갔다.

"모모야, 넌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니?"

"난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아직 생각도 안 해 봤어요"

"모모야, 넌 착하고 예쁜 아이다. 그게 탈이야. 조심해야 해. 네게 약속해라. 넌 절대로 엉덩이로 벌어먹고 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맹세해라"

"맹세해요. 그 문제라면 안심하세요."

"모모야, 힝상 명심해라. 엉덩이는 말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이란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그런 짓은 하면 안돼, 내가 죽더라도 .그리고 네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엉덩이 뿐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

"알아요, 아줌마, 그건 여자들의 직업이예요. 남자는 존경 받는 직업을 가져야죠."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쯤 서로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로자 아줌마의 두려움이 조금씩 가라 앉았다. (p150~p151)

 

로자 아줌마는 정신이 자주 자주 외출했다. 프랑스는 이방인들에게 해 줄게 별로 없는 나라다. 로자 아줌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웠고, 그녀가 죽으면 모모는 빈민구제소로 가야 하는데 모모는 그 곳이 끔찍하게 무서웠다.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간에 모모는 아줌마를 아파트 지하실로 옮기고 주변에 이스라엘에 갔다고 말한다. 아우슈비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줌마에게 지하실은 유태인 동굴처럼 안온한 곳이었다.

 

나는 세상사람들을 벌주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에 들어가 소시지를 실컷 먹었다. 동굴로 다시 돌아 왔을 때는, 자연의 법칙 때문에 로자 아줌마에게서 한층 더 나쁜 냄새가 났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던 삼바향수를 한 병 다 부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시퍼런 얼굴색을 감추기 위해 사가지고 온 갖가지 색조 화장품으로 그녀의 얼굴을 칠해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뜬 채로 있었지만, 눈 주위를 울긋불긋하게 칠해놓으니 보기에 덜 끔찍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유태인들이 하듯이 일곱 개의 촛불을 켜놓고 그녀 옆의 매트 위에 누웠다. 내가 수양엄마의 시체옆에서 삼 주일을 지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로자 아줌마는 내 수양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오래는 내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향수가 다 떨어지고 없었으니까, 나는 롤라 아줌마가 준 돈과 내가 훔친 돈을 가지고 향수를 사러 네 번 더 밖으로 나갔었다.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위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 이란게 없으니까. (p305~p306)

 

대부분의 독후는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는가? 등등이다. 슬프고 아름다운 독후에 나도 동감한다. 어느 날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하고.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말한다. 모모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부도덕한 곳은 두려움이 팽배하고, 문명사회의 그늘은 암울함이 가득한데, 어둠의 자식들은 원죄 속에서도 연꽃 같은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에밀 아자르는 문제(?) 되지 않는 경구들을 비애와 해학을 빌어 책의 곳곳에 비치해 놓고 있다. 어떤 독자는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책이라고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고 이해 하려 하지 않는 것들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작가였고, 그것을 실천한 작가였다고 한다. 
 

-전략

60세가 된 로맹 가리는 이미 완성된 틀 속에서 그저 안주하기만 하면 되는 삶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첫 소설에 대한 향수,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으며, '새로 시작 하는것, 다시 사는 것, 다른 존재로 사는 것'에 큰 유혹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진 세버그와 헤어진 이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각기 다른 두 작가의 역할을 해 왔던 것입니다.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로맹 가리는 영화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합니다. 그는 거기서 스물한 살의 신인 여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첫눈에 반합니다. 영화를 찍고 난 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진 세버그와 함께 파리로 돌아온 로맹 가리는, 16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 온 일곱살 연상의 아내와 이혼했습니다. 진 세버그 또한 영화배우인 남편 프랑소와 모레이와 결별했습니다.

진 세버그는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현대 여성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전 영화들에서 카메라가 여배우를 바라보던 시각과 달리 '여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여배우는 머리가 나쁘다'는 선입관을 깨고 당시 주류였던 백인사회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던 흑인들의 인권과 권력 신장을 돕는 진보적인 일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FBI(미연방수사국)에 존 레넌, 제인 폰다 등과 함께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혔습니다. 결국 진 세버그는 계속되는 FBI의 공작과 언론의 매도 때문에 스크린보다는 법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8년을 함께 살고 오랫동안 별거했습니다. 별거중인 진 세버그가 임신하자 로맹 가리는 자신의 아이는 아니지만 법률적인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화해했습니다. 얼마 뒤 진 세버그는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딸 니나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틀 만에 죽었고 그녀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로맹 가리와 이혼하고 일 년이 지나 진 세버그의 시체가 실종 열흘 만에 그녀의 자동차 뒷자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과음 후 치사량의 약물 복용이었고 당시 그녀 나이 41세였습니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디에고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진 세버그가 흑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중상모략하여 그녀를 정신병으로 몰고 간 FBI를 고발했습니다.

시골 약국집 딸 진 세버그의 죽음은 결국, 20세기에 '아름다움에 재능까지 겸비한 의식 있는 여성'이 주류사회에서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 준 비극적인 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 세버그가 죽고 일 년 뒤, 로맹 가리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나이 66세였습니다. 훗날 로맹 가리의 전기를 쓴 도미니크 보나의 말에 의하면 그는 진 세버그의 자살에 크게 상심했다고 합니다.

생전에 로맹 가리가 끔찍이 사랑했던 디에고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만들 것도, 말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내가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나를 보살폈다. 나는 작년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로맹 가리의 짤막한 유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조경란(소설가)-

 

책의 후미에는 로맹 가리의 유필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연표, 그리고 작가 조경란의 해설이 있다. 그의 삶과 죽음을 명료하게 설명한 유서는 프랑스 문단에 냉소했다.

카잔차키스는 세상이란 조잡하고 시시껄렁한 굿 같다고 했는데, 비행사, 외교관, 작가,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은 치열한 굿이기도 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그리고 여한 없이 사라졌다.

61살의 로맹 가리는 소설 속에서 로자 아줌마였고, 그의 아들 디에고는 모모였다.

 

2010.10.7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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