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정산(2008-12-23 18:24:15, Hit : 2081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뮌 헨 의 건 축 하 는 여 자
임 혜 지 의 공 간 이 야 기 

 

이 책은 꿈많은 문학소녀가 독일에 가족과 함께 이민 가서 건축가가 되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재미있게 펼쳐 보인다.

건축가들은 독일의 건축가의 생각들을 엿 볼 수 있고, 일반인들은 건축에 대한 여성 건축가의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의 감성과 독일 공학도의 합리적인 논리가 잘 버무려진 글이라 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조인숙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직장의 상사였는데 열정이 많고, 부지런하고, 문화재 관련 일에 적극적이다.

임혜지가 이미륵의 묘지에서 술잔을 같이 한 사람은 조인숙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체구에 허스키한 보이스. 초로의, 반백의 여성건축가는 "내게 말을 거는 공간"을 읽는 동안 임혜지로 투영되었다. 조인숙과 임혜지는 여러 모로 닮은 것 같다.

 

부제인 '뮌헨의 건축하는 여자'는 '뮌헨의 고건축하는 여자'가 책의 내용에 맞는다.

고건축의 조사 행위도 건축의 범주에 들지만 그녀는 문화재 전문가로서 활동하니까 한국의 기준대로 하면 실측, 설계의 문화재수리 기술자쯤 되겠다. 실측, 설계의 문화재수리 기술자는 고건축의 설계와 실측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국가로부터 부여 받는데 나는 몇 년전에 한번 응시했었는데 실무경력이 없어 떨어진 어려운 시험이었다. 

실측은 창의적인 요소가 없어 별로 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실측을 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원시적인 수작업이었지만 배우는 게 많았다. 기준점을 만들고 기준점에서 하나 하나 재어 도면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었다. 오랫동안 그리다보니 세밀히 관찰하게 되고,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직접 해야 하며, 디테일을 발견하고 디테일을 음미 하게 되었다. 또한 대충 하는 경우와 철저히 하는 경우에 검증이 되지 않아 하는 사람이 제대로 해야 한다. 근접해 관찰하면서 하나씩 그리다 보니 더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더 다가가게 된다는 걸 느꼈다. 그걸로 그전의 별로라는 생각이 없어졌었다. 임혜지가 메소포타미아의 발굴현장에서 돌멩이를 실측하면서 희열과 의미를 느낀 것을 내 경험으로 공감된다.

 

오래 전 유럽 건축을 답사할 때 독일의 건축들이 무표정하고 엄격한 디자인으로 프랑스와 확연하게 대비가 되는 걸 느꼈다. 독일 건축이 기계미학을 추구한다고 이해하면 간단한데 당시엔 그들이 외관에 관심이 적다고 생각했었다. 책에서 임혜지는 자신을 공학도로 지칭하는 것으로 봐서도 기계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건축도 그 영향 아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독일의 중간쯤 된다고 생각했다. 엄격함과 자유함의 중간쯤.

커튼월 외부창에 금속띠 장식이 유난히 많았는데 요즘 한국의 커튼월 건물이 대체로 그러하다. 유리와 금속의 가공에 어느 정도 기술이 뒷받침 되므로 금속 장식이 많아졌다.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기에 나도 선호했지만 이젠 식상하다.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독일을 떠올렸다.
 

2부 도시이야기와 3부 현장이야기에서 임혜지의 가치관과 건축관을 펼쳐보인다. 임혜지의 사유가 충분하게 나타나 있으며 글솜씨가 좋아 잘 읽힌다.  

"네게 말을 거는 공간들"은 표정있는 공간과 다르다. 내가 관계한 공간으로 그녀가 손댄 공간을 말한다. 현관이나 거실, 부엌, 아이들방, 발코니에서 가로수아래의 화단까지 더 확장하면 그녀가 실측한 칼스루에 연립주택과 메소포타미아의 유적, 범위를 더 넓히면 그녀와 연관없는 한국 전통건축의 공간까지.

그녀의 예민하고 지성적인 촉수로 공간에 귀를 기울이면 그 공간은 그녀에게 말한다. 그 공간의 대화는 추상적이지 않고 일상으로 내려온다. 나는 좋게 편하게 재미있게 읽었다.

심오한 철학이나 거대한 담론을 논하지 않고 밥먹는 일상에서부터 건축하는 현장에서의 생각들을 가감없이 담담하게 끌고 간 글들에 공감을 가지면서 나는 너무 모르는게 많고 너무 쉽게 공감한다고도 생각했다.

생각이 반듯하여 매사를 열심히 하고 그 매사에서 의미를 찾아 스스로의 존엄을 확보하였다. 독일에서 현장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에서 여자가 이룬 성취로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고건축이 아닌 건축을 전공 했다면 어떨까? 잘 모르겠다.  고건축이 조사와 기록의 학문쪽에 가깝다면 건축은 실용과 비실용의 경계에 있는 창작쪽에 가까워 다를 것이다. 건축을 나는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개의 내용들을 기억하면

-단열재와 디테일에 많은 내용을 기술한다. 우리나라 건축가와는 다른 공학도의 관점이다.

-건축주가 달라는 걸 주지 말고 건축주가 원하는 것을 줘라. 건축주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그 원하는 사항을 우리는 어떻게 높이고 어떻게 접근 시킬 것인가?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건축주를 위할 것인가?  건축주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건축가의 심리투시경을 언급하는데 이것도 건축주를 잘 포착하라는 뜻으로 읽는다. 

-지구 환경에 대한 우려와 대안들은 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화된 건축 흐름이다. 안도 다다오도 같이 살아야 하는 공존에 심혈을 기울인다.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싸고 빨리 건설하는 단계를 겨우 넘어서는 정도여서 이런 논의는 좀 더 있어야 활발해 질 것 같다.

-한국건축과 서양건축의 차이를 주연과 조연으로 본 것은 건축을 사물로 보는 관점처럼 보인다. 자연에서 건축은 어떻게 자리 해야 하는가?  우리 민족의 세계관으로는 자연의 일부, 우뚝해야 함이 아닌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 조연도 아닌 주변과 조화되는 풍경들...

 

아하! 그렇구나. 유적은 인간의 본질이 뭐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재확인하게 해주는 거구나.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 학문이라면, 예술과 문화는 인간의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인간이 짐승으로 화하는 걸 막아주는 거구나.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지구상에 암만 많은 빵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써 가진자의 본능적인 욕심을 다스려서 공정한 분배로 유도하지 않는다면 굶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고고학처럼 돈이 안되는 공부를 해야하는 거구나.
 

-밥먹는데 아무 도움이 안되는 고고학을 배운자의 사치가 아닌 배운자의 의무라고 깨친 것은 고고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세로도 좋다. 건축을 배운자의 의무는 건축이 필요한 곳에 몸을 낮추는 것이라고. 조금 안다고 까불지 말라고.  

-굴뚝은 인간이 불을 다스리고 사용한 역사이면서도 굴뚝을 청소하는 아이를 학대한 상징이다. 그녀는 순수한 영혼이다.

-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예술가밖에 없다. 학자와 예술가의 차이는 상상력이다.

-르뷰제 롱샹 교회당과 아이어만의 빌헬름황제 기념교회당에서 같은 감동을 느끼고, 팔라디오에서 다시 그리스 로마 건축으로 탐구한 것에서의 결론은 비례다. 조금 아쉽다. 나를 포함한 비례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논리를 본다.공명된다는 것은 비례를 포함한 공간의 총체를 말함으로 이해한다.
 

책을 만든 산파는 독자였다는 것이 독자들의 성원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뜻인데 인터넷 시대에 국경을 넘어 연재된 내용에 호응이 컸다는 뜻일 것이다. 100명 정도가 읽을 책. 500년 에 걸쳐서. 그녀의 우스개 소리지만 1년도 안되어 100명 넘게 읽었을 것이다.

 

겨울 나무는 하늘아래 겸손하고 땅위에서 당당하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건축가가 어떤 존엄성을 가지는지? 우리는 안다. 척박한 땅위에서 천박한 환경에서도 겸손하면서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되지 못할 뿐이다. 실존을 묻게 하는 수필로는 가볍지 않고 교양의 건축으로는 무겁지 않다.

 

그녀의 감동을 흉내 내어 나도 감동깊은 것들을 생각해 보니.

남 프랑스에서 본 유니테 따비따시옹, 천재 건축가의 아우라에 전율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What is design?) 에서, "장차 인류의 환경을 바꿔보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있는 무명의 젊은 건축가에게 이 책을 바친다"  안병의 선생님이 번역한 책으로 서문이 너무 좋고, 사명감이 불타게 했었다.

83년도였던가, 혼자서 부석사 오르는 길에 되돌아 본 그 가을, 소백산의 장려함, 그것은 그 때까지 내가 만난 적이 없었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었다. 부석사를 거기에 앉힌 조상들에게 무한대의 고마움을 느꼈고 그 후손으로 무한대의 자부심을 가졌다. 건축은 자연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희열과 감동은 묵직했다. 그 뒤에 몇 번 갔었지만 그 풍경은 보지 못했다. 빈한한 글재주로 남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 전까지는 가슴을 뛰게 했었는데 지금은 뛰는 가슴이 없어졌다.  Alas !!

부석사에서의 장면은 현재까지 Best of Best였다.  
 

그녀의 결론은 건축은 그저 위대하거나 추상적인 일이 아니고 인생처럼 담담하게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건축가란 그런 사람이다. 맞다. 하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옮겨 적는 것으로 내 생각의 일부를 쓴다. 

건축가란 위험한 직업인이다.왜냐면 불능과 전능의 해롭기 그지없는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곧 건축가란 예외없이 다른 사람의 힘이나 상황의 힘을 앞에 두고 과대망상적 꿈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려고 1년 내내 생각하는 사람이다. -렘 콜하스

 

2008.12.23 정산






53  [문학,교양]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6]  정산 2010/12/10 3677
52  [문학,교양] 자기 앞의 생  정산 2010/10/07 2236
51  [문학,교양]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 [4]  정산 2010/07/01 2266
50  [건축,도시]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2]  정산 2010/04/19 2489
49  [예술,사진] 예술가로 산다는 것  정산 2010/01/22 2444
48  [문학,교양] 불꽃, 제삼 인간형  정산 2009/11/05 2298
47  [문학,교양] 면앙정에 올라서서 [4]  정산 2009/08/10 2030
46  [문학,교양] 아파트에 미치다 [3]  정산 2009/05/09 2148
45  [문학,교양] 시간의 빛  정산 2009/03/09 1973
44  [문학,교양] 음예공간예찬 [4]  정산 2009/02/17 2049
 [문학,교양]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정산 2008/12/23 2081
42  [예술,사진] 일하는 예술가들 [2]  정산 2008/12/09 2127
41  [문학,교양]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4]  정산 2008/09/18 2175
40  [문학,교양] 밥벌이의 지겨움  정산 2008/07/29 1961
39  [경영,미래] 2010 대한민국 트렌드  정산 2008/06/14 1964
38  [문학,교양] 오래된 정원 [6]  정산 2008/04/08 2123
37  [문학,교양] 남자 나이 50  정산 2008/03/21 2050
36  [문학,교양] 자전거여행 1. 2  정산 2008/02/11 1985
35  [문학,교양] 일분 후의 삶  정산 2007/12/31 1950
34  [문학,교양] 마당 깊은 집  정산 2007/11/18 2450
 
  1 [2][3]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인터넷 정산헌

sitemap    home    guestbook


Copyright (c) 2004  Jeongsan.  All rights reserved.

Contact 3syk@naver.com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