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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2009-03-09 14:33:11, Hit : 1972
 시간의 빛

시간의 빛

시간의 빛

 

이문재의 "저녁에" 에 있는 글은

"강운구 선생은 이천년부터 이년 가까이. 나와 김훈 국장이 근무하던 시사주간지에 격주로 글과 사진을 연재했다. 그것을 묶은 것이 "시간의 빛"(2004)이다.

나는 선생의 책이 나올 때마다, 가방속에 한 두권 넣고 다니며, 특히 글쓰는 후배들을 만날때마다 펼쳐들고 열변을 토했다.(책을 펼쳐 든 곳이 대부분 술집이어서 후배들은 잔소리로 들었겠지만)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 강운구도 그랬다.

나는 글쓰는 후배에게 넌지시 책을 건네며 이렇게 주문했다.

사진은 나중에 보고 사진 설명부터 봐라. 후배들은 사진 설명을 읽다가 한숨을 포옥 내쉬거나 무릎을 치곤 했다." ---p119

 

 

시간의 빛의 서문에 있는 그의 글은

"그간 많이 돌아 다녔다. 찍는 것이 일인지 돌아다니는 것이 일인지 스스로도 구별하기가 어려운 만큼, 딴에는  온나라 구석 구석을 다 가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밟아 보지 못한 땅도 많다. 빈머리로 다니기만 하면 뭘하나?

...중략

이  땅에서는 풍경도 빠르게 사라진다.사람없어 한갓지고 빼어난 비경 같은 것은 이제 없다. 그런 곳은 이미 이 땅에서 다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그런 곳이 있다 하더라도 말 못한다. 지난 날 어리석어, 입 싸게 놀린 탓으로 별난 사람들 몰려들어서 망가진 몇 군데에 무거운 빚을, 갚을 길 없는 빚을 지고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인류사에서, 이 땅에서만큼 빠르게 온갖 것을 뒤죽 박죽으로 바꾼, 아니 버리고 새로 시작한 경우가 있었을까? 그러고도 걸핏하면 반만년 역사나 선조들의 지혜를 들먹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제의 길은 오늘의 길이 아니며, 어제의 풍경은 오늘 이미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말하자면, 온 나라가 고속도로와 고층아파트가 되려고 한다. 온 나라가 공사판이다.

그런 공사판 너머에 어디선가 아직도 남아있을 우리의 풍경을 찾아서 아직도 헤맨다."

 

40년지기 소설가 김원일은 강운구의 사진과 글은 느긋한 마음으로 소여물 씹듯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제맛이 살아난다고 했다.

그의 산문집 "기억의 풍경들"에서

사진의 대중화와 흔해진 필름으로 마구 찍어내는 영상물이나, 사전을 뒤져가며 온갖 풀이름을 다 동원하여 식물성 애잔함과 생명력을 그려내는 시나, 오지를 찾아다니며 그 속에 숨어사는 신선이 다 된 인간문화재급을 발굴해서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신선의 삶'을 취재해서 발표하는 글을 너무 흔하게 접한 세상이 되었다. 현재의 팍팍한 삶을 팽개치고 그런 별천지 세계로 결코 뛰어들 수 없는 도시인들에게 청량 산소 한 보따리를 선물로 풀어 놓겟다는 교묘한 상업적 저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술은 대체로 성공한다. 도시인은 대리만족으로나마 이제는 돌아가기에는 늦은 추억의 그 시간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강운구의 예술작업의 고민은 거기서 출발한다. 변별성, 곧 나만의 도 다른 세계를 가져야 만 내 예술과 작업의 존재 이유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강운구는 그 일차적인 방법으로 느리게 관찰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대상을 들여다보기를 집중한다.'그림이 되는' 아름다움과 쇼킹너머에 있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주목하여 그 내면의 진실을 담아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주체적 선입관이 아니, 대상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소중히 사유하기를 선택한 듯 하다. 사진과 글이 함께 어울어진 이번 책을 읽을 때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p117'


김 훈은 책의 말미에 발문을 썼다.  

...그리고 또 어느 해 가을, 경주 근처의 폐허를 어슬렁거리는 그를 따라 간 적도 있었다. 토함산 꼭대기에서, 그는 무너진 왕도의 들판 너머로 기우는 일몰을 바라보았다. 포개진 능선이 어둠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는 산위에서 서 있었다. 그는 세상을 깊이, 구석구석, 오래 들여다 보았고, 나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그를 몰래, 잠깐씩 들여다 보았다.

그토록 셔터 누르기를 아끼는 사진가를 나는 처음 보았다.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그는 세상의 언저리를 오랫동안 어슬렁거리면서 그 세상을 받아내야 하는 자신의 위치와 각도를 탐색했다. 세상의 모습과 질감과 내용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의 관계의 설정에 따라서 바뀌는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의미는 결국 설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닐 터이고, 사진은 다만 그 관계의 표현인 모양이었다. 세상을 살피는 그의 옆 모습을 흘깃거리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잘 알 수 없었고, 늘 말을 아끼는 그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빛의 밀도가 사위고 시간의 눈금이 성글어지는 어느 하오 무렵을 가려, 그는 주머니 속을 부스럭거리며 카메라를 꺼내 이리저리 빛을 헤집어가면서 두어 번의 셔터를 겨우 눌렀다. 60분의 1초가 열리고 그의 셔터는 다시 닫혔다. 내가 본 그의 카메라는 늘 작고 간단했다. 그는 늘 두어 통의 필름만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의 외양은 사진가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늘 세상을 바라보는 자로 보였다....---p252

 

그렇게 그가 찍은 사진은 쉬운 듯하며 보기 편안하다. 그러나 그렇게 흉내 내 찍어도 그런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 어슬렁거리면서 탐색하고, 시간의 빛이 만들어 내는 어느 무렵에 빛을 헤집어가며 찍는다 하더라도 우리 풍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그만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찍기 때문이다.

그가 포착한 풍경은 무엇을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보다 그것을 찍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여 그 자리에서 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간의 빛은, 사진으로 그 안에 담은 자연을, 글로 사진에 담기지 않은 인문을 함께 보여 준다. 김훈은 발문에서 "본다"와 "보인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말의 수사이기도 하지만 그 "보인다"의 의미는 공감된다.

 

그는 "자연기행"에서 꼴난 사진을 하는데 온갖 잡학이 다 소용된다고 썼다.

"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사는 사회적인 풍경을 찾는다고 쏘다녔다. 그러나 온종일 긴장한 채 두리번 거리며 헤매다가 느닷없이 다가오는 자연풍경도 마다않고 즐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쏘다니는 일이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다.

풍경, 한국 풍경, 이 땅만의 풍경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이뤄내는 것이다. 마침내 조심스럽게 말 할 수 있다. 풍경에 나오는 소재들보다는 그것들이 발산하는 정서적인 울림에 이 땅의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꼴난 사진 하는데 온갖 잡학이 다 소용된다는데 꼴난 리뷰 하나 쓰는 데에도 당연히 온갖 잡학이 다 소용될 것이다. 온갖 잡학이 빈한하여 꼴난 리뷰를 쓰지 않고, 다른 문사들의 글과 그의 글과 사진으로 리뷰에 갈음한다.

책의 어디를 펼쳐도 서정시는 있으며, 소여물 씹 듯 천천히 음미할 만 하다.

 

2009.3.9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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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산수유를 두고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곷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자신을 지우는 것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라고 했다.이 빼어난 글을 읽고 산수유에 대해서 다시 쓰는 이는 바보다. 바보가 된 김에 꼭 한마디만 꼬리를 달자면, 산수유 꽃무리는 이 땅이 이른 봄에 꾸는 꿈이다.---p19

 

바람은 흔히 자유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하고 완고한 법칙만 따를 뿐이다. 바람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정해진 때에 정해진 길을 따라 불어온다. 해마다 어김없이 여름의 끝무렵에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나 폭풍, 그리고 봄에 북서쪽에서 황사를 싣고 오는 모래바람 같은 공식을 보면 바람에게도 그다지 자유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p33

 

거의 같은 기간에 활짝 피었던 꽃들은 봄비가 마른 땅을 적시고 지나가면 그 젖은 땅위에서 허허롭게 거의 동시에 눕는다. 그러면 이 땅의 짦은 봄이, 아우성이 지나간 것이다.---p61

 

여름은 서서히 저문다. 사람들이 철새떼처럼 잠시 몰려왔다가 우르르 떠난 섬은 그런 기억도 없다는 듯이 여전한 풍경으로 시치미를 뗀다. 저물녘은 장엄하고 아름답다. 겨우 하루 해가 지는 것일 뿐인데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숙연해진다. 철이 안 든 사람은 그런 걸 바라보기를 좋아하며, 철든 사람은 그런 것에서 감각으로서는 아름다움을 느낄지라도, 어쨌든 '지는 것'이므로 논리로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생각이 보편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선택할 수 있다면, 끝까지 철 안 드는 쪽을 택하고 싶다.---p.67

 

안개에는 흐지브지 폼만 잡다가 마는 것도 있고 온종일 질척거리는 비로 변하는 것도 있다. 초 여름, 안개 짙은 숲속에선 나무들 자라는 소리가 쑥쑥 들린다. 흐릿한 장막을 저희들끼리 머리 맞대고 툭툭 물방울 주고 받으며 무성하게 큰다. 이윽고 장마 구름이 산을 덮으면 짙고 무성한 숲의 나무들은 팔을 축 늘어뜨리고 비에 몸을 맡긴다. 언제 그리도 축축하고 지루했냐는 듯이 장마 지나가고 나면 작열하는 한 여름이다. 그러면 이따금 소나기가 묵묵한 숲울 진저리치게 흔들고 지나간다. 이런 것이 보통해의 보통 여름이다. ---p90

 

고창뿐만 아니라 정선이나 진안, 그 밖의 여러 지역의 높고 아름다운 곳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 무턱대고 눈에 안띄는 곳에 묻는다고 일이 끝나는 것일까? 그런 곳들의 침출수는 흘러 흘러 어디로 갈까?

몇 만년뒤의 (그때까지 인류가 살아 남는다면) 고고학자들이 '금수강산'의 은밀한 곳에서 이 수상한 흔적들을 발굴한다면 '우리 조상들은 문명을 가진 특이한 야만인이었다!'고 감동받을 것임에 분명하다.---p117

 

산은 그렇지 않은데, 바다는 한나절만 바라보아도 질린다. 그러므로 바다는 멀리서 잠깐 볼 때가 가장 좋다. 멀리 수평선까지 확 트인 풍경은 확 하는 순간이 지나가면 단조롭다. 그러나 대기와 물이 어우러져서 점점 다른 빛깔로 표정을 바꾸는 저물녘은 다르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르며 만드는 풍경, 그 장엄한 시간은 길지 않다. 그래서 좋다.---p123

 

쓰러져 잠든 나무의 뿌리를 아직은 살아있는 뿌리들이 잡고 있으므로 절벽에 거꾸로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저 살아있는 것과 잠든 것 사이에는 시간 차이밖에 없다. 영원한 것은 그러므로 영원히 잠든 것밖에 없을 것이다.

굳게 믿은 발치에 난데없는 절벽이 생긴다 하더라도, 사람은 그러나 붙박이인 나무와 달라서 다행이다. 늦가을의 설핏하게 저무는 햇살이 잠들었거나 아직은 살아있는 나무와 비탈진 절벽에 검붉은 빛이 드리웠을 때 그 아래로 아무것도 모른 채 굽이 틀며 지나가는 길은 이미 푸른 그늘에 잠겼다.  ---p149

 

불장안은 언제나 재미있다. 자칫 잘못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진짜 불장난을 할 빈터가 없다. 그래서 대신'불장난'을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p206

 

새 희망과 새 감회가 교차되는 엄숙한 시간은 언제나 짧다.해가 수평선에 잠기고 나서 잠시 머뭇거리듯 컴컴해지다가, 못내 그냥 꺼져 버리기에는 섭섭하다는 듯이 그날의 부록처럼, 마지막 악장의 코다처럼 하늘을 장엄하게 밝히는 놀이 피어오르는 날이 있다. 섣달 그믐날 그러기를 바란다.---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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