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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2009-05-09 12:24:42, Hit : 2148
 아파트에 미치다

아파트에 미치다
 
아파트에 미치다
 
 
수요산행에 구룡산에 올라 도시를 보면 보석처럼 영롱하다. 아파트로 채워진 삭막한 도시는 간 곳 없고 가로 조명이 아롱지는 도시, 우리 시대가 만든 아파트는 환영으로 찬탄할 만하다.
이 도시의 아파트를 바라보는 생각은 10인 10색이다.
내 아파트가 빨리 재건축이 되었으면...
대출 이자가 내렸으면...
갈아타기가 여의치 않다...
섬처럼 남겨진 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겠지...
저 닭장에서 빠져 나오려는 사람보다 편입되려는 사람이 많다.
재건축전의 주민은 어디로 갔을까?
아파트에 안주하는 삶은 곤고하고 안온하다.
20년 뒤에 여기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아파트를 보면서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는 그걸 잘 버무려 "아파트에 미치다"라는 책을 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재미 삼아  읽어보라고 책을 추천했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아파트를 더 이상 짓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아파트는 지어지고 팔리고 거래된다. 주초마다 일간 신문에 아파트 매매, 전세 시세표가 게재되는 나라에서 전상인 교수는 아파트를 우리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시경으로 주목했고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게재된 아파트 관련 기사들을 잘 버무려 우리의 변하는 주거와 사회를 분석했다.
 
내가 메모한 내용이다.
아파트는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과시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지배계급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급히 만들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자주 이사함으로써 지역 공동체를 위한 사회자본의 축적이 어려워진다.
사람이란 가까운 이웃이나 지역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다.
속옷차림으로 지내는 것이 자유롭고 해방된 삶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공간적 차원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주장 자체를 지나치게 당위적으로 받아들일 근거도 막상 별로 없다.
반은둔을 원하는 이가 많다.
현대사회에서 일종의 신씨족 사회가 부활한다.
분파적 사회자본은 존재하고 풍부하나 그것을 초월하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총자본이 감소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단지내 혼재 방식은 쾌적한 사회심리적 환경조성의 측면에서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사회의 갈등은 단순한 주택이나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한국사회 갈등 구조의 축소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집을 마련하는 것은 개인에겐 선택문제지만 거시적으로 볼때 주택문제에 대한 합의, 혹은 정책적 개입의 산물이다.
아파트는 본질적으로 이웃의 문제와 사회적 관심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주거형태다.
가구나 가전 제품이 또 다른 가족이 되어버렸다.
아파트는 이념적 보수화의 기지로서 그리고 중산층 신화의 무대로서의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아파트는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제공된 개인적 기회이자 성취의 대상이었다.
아파트는 마치 생물처럼 인간 생태계에 적응하고 진화한다.
아파트의 토착화는 근대화의 도정속에서 전통적 삶의 방식을 계속 유지 하려는 한국인의 심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부엌은 목하 공간 혁명의 절정에 있다.
집의 역사는 부엌의 역사이고 전통적으로 집의 중심은 난방과 취사에 필요한 불이 있는 공간, 곧 부엌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자식의 방이라도 노크하고 출입해야 한다.
우리나라 미래 세대의 도덕적 불감층, 정직하게 사는 것과 부자가 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매체에서 소개한 내용중 일부다.
한국의 전통 주택에선 남성과 여성의 공간이 구분돼 있었지만 아파트에선 남성의 공간이던 사랑방이 거실로 흡수됐고, 외떨어져 있던 부엌의 위상이 다른 공간과 같아졌다. 이런 공간 배치가 가족 구성원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촉진했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여성의 자궁경부암이 급감한 것은 아파트 거주 확산에 따라 샤워가 일상화한 덕분이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한 비결도 아파트의 확산에 있다.
한옥과 달리 아파트에는 그림을 걸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많아 미술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요즘 유행하는 아파트 브랜드를 보면 상류 사회의 유행과, 그들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상떼’ ‘파크’ ‘리버’ ‘그린’ 같은 아파트 이름은 웰빙과 자연을, ‘캐슬’ ‘팰리스’ ‘궁’은 신분상승을, ‘자이’ ‘e’ 등은 지식정보(IT)를 추구하는 상류층의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the #(더 샾)처럼 뜻을 알기 어려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소비자에게 ‘이 정도는 아시겠죠’라는 식으로 자존심을 건드려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요즘 가사도우미를 ‘아줌마’가 아니라 ‘이모’나 ‘미세스 아무개’라고 부르는 유행을 소개했다.
 
논밭 한가운데 뜬금없이 들어서는 ‘논두렁 아파트’가 급증하는 현상은 전형적인 농촌의 가옥에 살면 배우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 농촌 총각의 현실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아파트 문화를 진단했다. 아파트의 고가화(高價化)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아파트 진입 장벽이 높아짐으로써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파급될 수 있는 온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파트로 인한 가족 내부의 권력변화에 주목한 ‘아파트 공간의 가족정치’를 보자. 아파트는 남녀평등에 기여했단다. 전통주택에서는 사람이 붙박이고 밥상이나 다기 같은 가구를 옮겨가며 썼는데 대체로 운반자는 여성이어서 자연스레 남성이 여성의 상전이 되었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에서는 소파나 식탁 의자 등 ‘신체가구’가 일상화되었고 남성도 이를 이용하려면 스스로 이동해야 한다. 때문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족구성원 모두 상대적으로 평등해졌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남편의 수입을 훨씬 능가하는 소득을 올린 복부인들이 늘면서, 또 문단속이 쉬워져 주부의 나들이가 잦아지면서 ‘안사람’이란 표현이 의미를 잃게 됐다.
 
아파트가 부의 원천이자 사회적 신분의 척도가 된 상황에도 주목한다. 우리나라에서 가구당 총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율이 76.8%로 미국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70년대 아파트 공급이 확대되던 무렵 금융자본은 공업개발에 집중되고 사회보장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형편에선 장래에 대비한 목돈을 마련하는 수단으로는 아파트만한 게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압축성장에 힘입어 ‘부동산 불패신화’가 이어졌으니 아파트 투기를 단순히 비뚤어진 개인심성 탓으로 돌리기엔 무리라고 풀어준다. 요컨대 국가정책과 사회환경 탓이 컸다는 것이다. 또한 주택의 가치를 쉽게 계량화할 수 있는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주류가 되면서 아파트 평수와 자녀들의 성적(등수)으로 사회를 서열화하는 ‘한국식 평· 등주의(坪· 等主義)가 자리잡았다는 흥미로운 설명도 들려준다.
 
무엇보다 아파트가 한국사회의 좌경화를 막는 데 일조했다는 ‘아파트와 이데올로기’에 눈길이 끌린다. 급속한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빚어진 주택난에 정부는 아파트 공급이란 물량공세로 대응했는데 아파트 구조상 거주자들은 가족주의와 개인주의 가치관에 친숙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에 따라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나라에서 아파트거주민은 자본주의와 가족주의가 접합된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최대 온상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이들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포함한 몇 차례의 계급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지 않도록 하는 방파제 구실을 했으리라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아파트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볼까. 우선 일시적인 가격변화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의 고가행진은 계속될 것이란다. 고급 아파트 거주가 현대 한국인에게 중산층 이상이 되기 위한 자격증 같은 것이 되었기에 “전국민의 60% 이상이 40평대에 살게되는 그날까지” 아파트 전성시대는 계속되리란 근거에서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당장 젊은 세대가 내 평생 내 힘으로 내 집 하나 마련할 꿈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좌파 포퓰리즘의 온상이 마련되리란 잿빛 전망도 함께 내어놓는다. 그러니 대한민국 체제의 안정적 확대재생산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주택정책은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삼천리 금수강산과 전통적 미풍양속은 순식간에 변하고 있다. 금수강산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훼손되고, 전통의 가치들은 아파트 생활로 변한다. 모든 게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 변화가 못마땅하고 불안하지만 변화는 그 가속을 멈추지 않는다.
국가라는 이성 권력은 미래 문제로 미루고 개인은 사익으로 미래 문제를 생각할 틈이 없다.
책은 그의 생각보다 신문에서 빌려온 생각으로 쓰여져 우리 사회의 문제보다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공급문제에서 자신의 견해를 작게 밝히는 것으로 결론에 급하게 이른다. 진지하게 우리의 문제에 성찰을 기대했는데 그건 사회학자의 업역이 아닌가 보다. 아파트의 탐욕(greed)앞에 공허하기는 건축가들도 매한가지다.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 나눔이 중요하고 채움보다 비움이 중요하다는 것들은 다른 책에는 있고 "아파트에 미치다"에는 없다.

 

2009.5.9  정산




정제용 '건축이 삶을 규정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면 자기 스스로도 소외된다.'는 것을 아파트라는
건축 양식을 통해 잘 느끼게 됩니다.

제가 요즈음 서울에 한 여대에 강의를 들으러 매주 다니지요
우리 사회의 전통과 건축과 연계해 학생들이 읽어 볼만한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십시요.
건축이 상당한 우리문화의 전통과 왜곡을 꿰뚫어 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2009-05-24]
정산 전통과 연계해 학생들이 읽어 볼만한 책을 추천 하라고 하면

니시오카 츠네카츠-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타니자끼 준이찌로-음예공간예찬
최부득-건축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이중에서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그 다음에 음예공간예찬.
건축을 잘 모르는 학생에게 추천할 만한 책으로는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전통과는 관련이 적지만 열정적인 건축가의 삶과 사유를 엿보는 책으로 안도 다다오가 편집한 "건축가들의 20대" 를 추천합니다.

구중서의 "면앙정에 올라서서"를 님에게 추천합니다. "아파트에 미치다'도 심심풀이로 추천합니다.
[2009-05-25]  
정제용 감사드립니다.

젊은 지성들에게 커다람 보탬이 될 것입니다.
[200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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