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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2007-11-18 23:25:31, Hit : 2533
 마당 깊은 집

마당깊은 집

마당 깊은 집  

 

유년의 기억들이 휘발되는 중년에게 마당깊은 집은 애뜻하고, 따뜻하고, 무거웠다.

가슴 아픈 사실들에 공감한 시간이 한 달 넘게 지났지만 단편으로 남은 정경들은 친근하다.

 

13살 어린 주인공은 비슷한 유년과 겹쳐진다.

전후에 생존보다 절박한 실체는 없었는데 거기엔 아버지보다 어머니라는 악착같은 모성이 있었고 그리고 마당과 골목길이라는 공간구조가 있었다.

 

마당 깊은 집이라는 제목은 군더더기 없이 내용을 잘 설명한다.

마당은 공동주택이 주거전체를 장악하기 이전의 시절을 알려준다. 우리 전통주거도, 적산가옥도, 집장사 들의 아까렝가 집들도, 그것들이 짬뽕된 양식에서도 마당은 있었는데 이제는 마당을 없앴다. 비어있음으로 용도를 충만하게 만들었던 그 묘미를 인식하던...

깊다는 것은 두 개의 공간 구조로 수평적 거리와 깊이가 깊다는 수직적 의미로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유난히 다운된 마당이 홍수 때 비를 가두고 나중에 집을 짓게 된다는 걸 암시한다.
집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으로 여러 세대가 기거하는 주거로 인식된다.

처마를 내어 달고 솟을 대문의 한쪽이 기울어진 묘사는 실종된 집에 어울리는 시선을 보여준다.

전후에 급하게 지어져 우리가 살았던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집.

대문으로는 주인이 출입하고 세를 사는 사람들이 골목길에서 바로 출입하는 길가의 가게가 있고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근린상가의 구조들.

 


 


 

세월이 흘러 그때의 고생담들은 휘발되고 남은 자리에 추억들은 소실된지 오래이다.

결핍과 노동의 근대성에서 누구나 일을 했고 일 자체로 교육이었는데 과잉과 소비의 현대성에서 취득과 유기가 일상화되어 행복한가?

짧은 시간에 근대성의 자리에 치환된 현대성들은 편리하지만 불안한 그림자를 동반한다.

 

다른 독후감들은 일률적으로 아련한 그 시절을 회고하는 6.25 소설이라 하는데 나는 덧붙여 사회와 공간의 연계를 재생해 보게 하는 소설로 읽힌다.

전쟁으로 인해 불구가 되어버린 삶, 더러운 세월을 살아야만 하는 운명들이 사는 공간 구조는 척박하지 않고 제대로된 커뮤니티로서 작동된다.

그 시절을 함축시키는 단어들

코흘리개

신문배달과 신문팔이

바람빠진 축구공

오전반과 오후반

한 방에 오글 오글 모여 몽당연필을 침질해가며 숙제를 하는 정경

죽은 동생이 그 추운날 난로 같았다

입는 장사, 먹는 장사가 호황을 누리는데에도 주인집 아저씨는 방적공장 사장이고 아주머니는 금은방 사장이다.

 

유년의 기억의 편린들은 고드름

하수도 역류

공중화장실에 줄선 모습

회벽과 툇마루

재봉틀

펌프와 우물

콩기름 바른 장판과 도배하는 아버지

길에 면한 외벽은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이웃들의 소음으로 잠을 깨고

까치발의 선반, 그 입체적인 공간활용 

삐그덕 거리는 나무평상

커다란 트랜지스터 라디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보리차에 밥을 말아 먹던 여름 방학의 무료함

저녁이면 감나무도 바위도 무섭다.

온 가족이 요강 하나로 긴 긴 겨울밤의 해후소가 되고

 

지금부터 반백년전인 1954년도, 묘사는 살기 위해 안간힘을 하는 군상들의 일상이었다.

마당있는 집에서 살았던 기억을 가진 이들은 공감하리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지는 커뮤니티들의 삶.

어떤 집도 마당이 있고, 어떤 집도 골목길에 연해 있었 다.

그 길로 많은 이들이 만나고 살고 싸우면서 지나면서 고단한 일상을 보냈다. 

풍로가 석유곤로로 연탄으로 취사와 난방이 분리되는 시절을 경험한 세대에게 불피우던 추억들은 이제 가물가물 해진다.

 

마당 깊은 집의 마지막은 이렇다

“나는 마당 깊은 집의 그 깊은 안마당을 다른 흙으로 돋구어 올리는 것을 목격했다. 내 대구생활의 첫 일년이 저렇게 묻히고 마는구나 하고 나는 슬픔이 가득찬 마음으로 그 묻히는 땅을 보았다. 곧 이층 양옥집이 초라한 내 삶의 족적을 딛듯 그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2007.11.18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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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집은 육이오 소설이며,동시에 추억의 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김원일의 다른 어떤 소설보다 자전적이며, 김원일로서는 이제쯤 자신의 얼굴로 되돌아볼 때쯤 되었다는 대가스러운 문학 의식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방금 나는 대가스럽다는 표현을 했는데,그것은 이 작가가 육이오 이후 50년대 초의 현실을 놀라운 기억으로 재생해내면서 치밀한 객관성을 확보해가는 한편,다른 한편으로는 추억을 통한 소년의 시점을 시종 유지해나감으로써 풍성한 서정성을 얻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서정성과 객관성을 함께 획득하는 서정적 리얼리즘의 경지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으로서,이 같은 생각은 물론 이들 작품에 대한 현실감을 동반하는 나의 감동으로부터 비롯된다.

왜 그럴까? 과연 길남의 짐작대로 “다리 밑에서”데리고 온 아이였을까.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유독 자신에게만 증오, 비정의 감정이 편재해 있었다고 서러워하는 소년 길남이에게 있어서 당시로서 그 이유가 석연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비정, 독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단단함은, 혼자 남은 여성, 특히 전쟁터에서 혼자 남은 여성 특유의 생존 본능과 남편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장남을 향한 남편에의 대상 심리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좀처럼 허물어질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인용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설움에서 확인될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설움을 단단하게 감추고 있으면서, 누구에겐가 기대어야 할 심리적 지주를 장남을 통해서 발견했던 것이며, 어머니→장남으로 이어지는 관계에서 설움의 심리적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편과의 생이별, 생활고에 의해 모질어진 어머니의 설움이 장남에게 그대로 옮겨감으로써 아직 어린 장님은 어머니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서러움을 키워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어머니와 장남의 관계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먼저 어머니의 경우 그녀는 남편의 실종으로 인해서 발생한 부재/결핍의 상황을 자기 폐쇄/자기 훈련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서만은 완전한 극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그 의존의 대상으로 장남을 끌어들이고, 장남에게 자신의 방법의 터득을 그대로 요구한다.

그러나 장남의 경우에 있어서 애당초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년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실종은 마찬가지로 부재/결핍이었으나, 그것이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의 부재/결핍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해지는 어머니의 요구는 절실성/당위성으로 다가오지 않으므로, 그러한 어머니의존재 자체가 모성의 부재/결핍이라는 이중의 상황을 그에게 안겨준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이중의 억압을 의식하게 되고, 그로부터의 탈출이 가출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 가출은 실패했고, 또 실패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심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길남은 이미 어머니의 훈련 틀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정도 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소설에 나오는 어머니와 장남 사이의 동화↔소외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동화되어 있으면서, 의식은 언제나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ㅡㅡ김주연의 해설 「모자 관계의 소외/동화의구조」에서

 

『마당깊은집』은 가족 서사와 사회역사적 서사를 교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이다.문제적 개인사 내지 가족사가 민족사의 테두리 안에서 의미의 마당을 효율적으로 마련한다.이 소설은 단순히 가정소설이나 세태 풍속소설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진다.

김원일 문학의 핵심적 기저 구조를 담고 있는 『마당깊은집』은 난세의 성장 소설이다.

ㅡㅡ유찬제의 해설 「타자화된 자아의 글쓰기」에서

 

김원일의 동생이자 소설가인 김원우는 어머니의 형에 대한 매질을 <참으로 이상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회상했다. 그의 말이다. 

"유독 형님에게만 어머니는 닦달질을, 그것도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퍼우어 댔다. 별것도 아닌 꼬투리를 잡아 형님에게 매타작을 퍼붓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을 지경이었고, 누구도 믿기지 않겠지만 가죽 허리띠로 어쩌자는 것인지 당신의 맏자식 목을 조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요컨대 사람이 되라는, 남편복 없는 년이 자식복이나 있겠냐면서 과부 에미를 뭘로 아느냐는 그런 폭력 행사는 형님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걸핏하면 벌어졌다. 그런 생지옥을 보면서도 나는 눈물만 글썽거릴 뿐 어머니 팔에 매달리며 말리지도 못했고 말릴 수도 없었다.

ㅡㅡ김원일 깊이읽기, 문학과 지성사, 2002)

 

전쟁은 인간의 세상을 단번에 '하향평준화' 시킨다.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도덕이나 법, 가치와 미덕 같은 질서 원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명제 앞에 가차없이 무너진다. -중략-

그리고, 불안한 평화가 왔다. 짐승이 할퀴고 간 상처와 혈흔 위에서 사람들은 다시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 아우성쳤다. 예측불허의 삶은 질척한 웅덩이처럼 도처에 펼쳐져 있었다. 이 책은 그 시절의 이야기다. -중략-

포연이 가시지 않은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세우고 밥을 끓이며 아이들을 키우던 사람들. 그렇지만 저마다 가슴들은 채 식지 않은 화인(火印)으로 뜨겁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 뜨거움에 데이기도 한다. 소년에 대한 어머니의 가혹함은 놀란 가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생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다름 아닐 것이다. 홀로 월북해버린 남편에 대한 분노와 슬픔도 묻어있을 터였다. 소년도 그것을 알고 있다. 집을 나와 역 대합실에서 지내고 있던 소년은 결국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고깃국을 먹으며 '나는 역시 어머니의 아들'임을 깨닫고 목이 메인다.

아이든 어른이든 '짐승의 세월'을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대견하고 눈물겹다.

ㅡㅡ금이정의 도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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