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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2008-07-29 18:03:06, Hit : 1961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아침에 밥벌이에 나서면 아내는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한다.

오늘 몇시에 들어올 거예요?

일 하러 가는 사람에게 일 잘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빨리 오라는 듯해서 그 말이 싫다고 한다.

 

지겹다고 느낄 때 벌써 은퇴가 다른 이의 참담함이 아닌 나의 실재로 다가 온다.

밥벌이를 하다가 밥벌이를 못해도 밥은 지속적으로 필요한 걸 요즘 알게 되었다.

 

출근을 하면 밥이 나오는데 우리의 일은 입력과 출력이 비례하지 않고 비효율적이라 이제 시작인데 아직 끝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유별스럽게 화가 난다.

우리의 밥벌이는 부가가치가 높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노동의 대가로 너무 약소하다. 도면 몇 장으로 건축주에게서 큰 돈이 나가고 우리에게 쥐꼬리 만한 돈이 들어온다. 설계비는 건물의 초기 단계에서 지불됨으로 구현되지 않은 현물로서 아깝게 생각된다고 한다. 도면은 그려진 것보다 그려지지 않는 것들에 쏟은 시간들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 서로는 서로 손해보는 거래를 한 것이다.

 

우리는 일하러 가는 것인지 시간을 때우러 가는 것인지 흐리멍텅하게 나선다. 계산 착오가 많아 받을 것 이상으로 많이 해 준다.

이제 지겹고, 철이 들어 "선 하나도 그냥 긋지 마라"고 한 말 대신에 빨리 마무리 하자로 한다.

 

작년에 월파와 한 잔 하고 서점에 들러 샀던 책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었다.

김 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은 밥벌이를 하는 김 훈의 단상들이 재미 있다. 그의 글은 약간의 관조와 해학과 유식이 시니컬하지만 그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의 글은 나에게 다른 생각들을 갖게 한다.

나는 그의 흉내를 내어 본다.

 

좋은 디자인이란?

유리창과 건축

건축의 모성

똥타령-화장실 설계

새로운 아파트를 향하여

광장

열정, 온정, 냉정

불타는 문화재

아버님의 노년

집과 길

광장에 서서

건축민원

건축주의 품성

가설계의 유혹

건축가의 꿈

북한산, 원효와 의상

한방과 헛방

건축가를 섬기는 사회

고속도로 휴게소

변비가

공장과 창고

직업병

인풋과 아웃풋

또 신도시

정산을 욕되게 하지 마라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예술가와 건축가

은행나무와 세월

어느 결혼식과 제너레이션

입시제도

 

장마비속에 하릴 없이 앞 일을 생각하니 질문도 없고 답도 없다.

루이스 칸은 미완의 프로젝트와 많은 빚을 안고 공중화장실에서 죽었고, 안선생님께 자세를 배웠는데 선생께선 뇌출혈로 고생하시다가 가셨다.

 

선 하나도 생각없이 긋지마라고 하셨고 글 하나도 생각없이 쓰지 마라고 하셨는데 어줍짢게 이런 저런 글을 날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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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노는 게 신성하다.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

목수들의 일터에서 놀다

나의 떨림으로 너를 느낀다

밥벌이의 지겨움

늙기란 힘든 사업이다

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이런 여자가 아름답다

가슴의 미학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셋이 함께 날아가는 세상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

꽃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인간의 다리와 바퀴 사이의 자유

늙은 기자의 노래

'돈'은 기호인가 실물인가

고통의 근원을 사유하며

아이들은 청순하기만 한데

히딩크의 열풍이 주는 교훈

나의 동쪽은 당신의 서쪽

서민

치욕

까치둥지

이념

노출

늙은 기자의 노래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쇠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며

사대(四大)의 보이지 않는 춤

좋은 소금은 폭양 속에서 고요히 온다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꽃은 꽃 한송이로서 아름답고 자족하다

지난 11월에는...

밧줄의 아름다움

물드는 산, 꿈꾸는 나무

저절로 되어진 것들의 힘

인간은 수몰되지 않는다

가을 바람소리

정처 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

거리에 관한 짧은 기록

'블랙홀' 신용카드

슬픈 아우성

서울에 광장을

명동성당과 조계사

불도저 앞 나무심기

황사의 경고

'밥'에 대한 단상

가로수의 힘겨운 봄맞이

라파엘의 집

'아줌마'와 미인대회

어린이 노동과 월드컵

몸의 승부, 생명의 힘

오프사이드 뒤의 적막

함성 때마다 문지기는 외로워

남녀 구분 없앤 신명의 힘

한 편의 문학평론과 하나의 인터뷰

기형도 詩의 한 읽기

사무라이,예술가 그리고 김훈 - 남재일과의 인터뷰

그의 문장은 자연스런 대화가 아니라 치밀한 독백이었다.

( 본문 252쪽, 남재일, 「사무라이, 예술가 그리고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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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 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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